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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시 Feb 08. 2019

바다소

음식동화 12 :: 소고기 미역국

먼 옛날, 바다에는 소들이 살고 있었어요. 그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감태, 미역, 파래 등와 같은 바다 풀을 뜯어 먹으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지요. 이들은 다른 바다 주민들과는 달리 입으로 소리를 낼 수 있었어요. 그래서 바다 속 다른 생명체들은 초음파를 쏘는 돌고래와 더불어 바다 소를 형님으로 여기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바다 위에 작으면서도 커다란 물체들이 둥실 떠다니기 시작했어요. '배'라고 불리는 그것의 위에는 두꺼우면서도 얇은 껍질을 두른 생명체들이 타고 있었지요. 그들은 작살이나 그물 같은 것을 내리면서 바다 속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고등어 꽁치 따위의 작은 물고기들이 그물에 걸려 바다 위로 나가게 되었어요. 하지만 바다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작은 물고기들이 조금 사라지는 것쯤이야 넓디 넓은 바다에서는 큰 일이 아니거든요. 물고기들이 수명을 다해 죽는 경우도 허다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배 그리고 그물의 크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시작했어요. 그물망도 촘촘해졌고요. 그러자 예전에는 그물 틈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다니던 새우까지 모조리 건져올려질 지경에 이르렀어요. 남은 바다 주민들은 심해 평원으로 모였어요. 대륙 사면이나 해저부에 사는 주민들도 내려오고, 깊은 해구에 사는 이들까지 모두 모일 수 있도록 말이지요. 그들의 의견은 둘로 갈렸어요. 배를 탄 이들에게 힘으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경파와, 이들을 설득하자는 온건파였지요. 전자는 상어가 중심이 되었고 후자는 돌고래가 중심이 되었어요. 두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자 주민들의 시선은 바다소를 향했어요. 생각을 되새김질 하던 그들은 천천히 입을 열었어요.


"저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내는 것은 우리뿐이니, 우리가 가서 설득을 해보지요."


'아!' 상어를 중심으로 탄식이 터져나왔어요. 하지만 온건파들은 고개를 끄덕였지요. 돌고래가 바다소의 말을 이어 받았어요.


"그럼 우리가 당신들 뒤를 따르리라. 비록 저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어렵겠지만 전략을 짜드리도록 하지요."


그렇게 바다소들은 천천히 물 위로 고개를 내밀었어요.


"엄청나게 큰 물고기다!!!!!"


바다소를 발견한 뱃사람들은 괴성을 질렀어요. 곧 그들이 가진 가장 큰 작살과 그물을 꺼냈지요. 하지만 작살을 사용하기도 전에 바다소 한 마리가 스스로 그물 위에 몸을 실었어요. 배 위로 올라간 소는 신사적인 태도로 대화를 시도했어요.


"이제 그만 우리의 공간에서..."


'콱!'


날카로운 작살이 바다소의 목을 찔렀어요. 소들은 말의 실을 귓바늘에 꿰어보기도 전에 즉사하고 말았고요. 이를 본 나머지 바다소들은 일단 후퇴를 했어요. 그 사이에 바다소 한 마리는 껍질을 두른 이들의 먹이가 되고 말았어요. 며칠 후 다시 바다소 일행은 배 근처로 향했어요. 하지만 이번에도 입조차 열지도 못한 채 멸절되어버린 소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그들의 귀에는 질겅질겅 자신들의 살을 씹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이거... 엄청나게 맛있는 고기인데?"


그렇게 모든 바다소들은 엄청나게 맛있는 고깃덩어리가 되어 절멸하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딱 한 마리, 살아남은 바다소가 있었어요. 사람들이 동료들을 먹어치우는 사이에 배에서 내려온 그는 심해 깊은 곳으로 들어가 버렸답니다. 육지와 연결되는 구멍이 있는 그곳 말이에요.


바다의 목구멍을 통해 땅 위로 나간 바다소는 '바다'를 완벽하게 잊고 한 마리의 소가 되었어요. 다른 육지 소들처럼 '음메 음메' 울음을 울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그도 가끔은 바다를 떠올리게 될 때가 있었어요. 도축된 후, 냉동실 속에 갇혀 자신과 비슷한 처지가 된 바다 동료를 보면 고향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거든요. 그 동료는 한때 자신의 먹이이기도 했던 미역. 바다소는 미역으로부터 몇 가지 이야기를 들었어요. 바다소에 이어 많은 바다 생물들이 멸종되었다는 것, 끝까지 평화적으로 사람들을 대화를 시도하던 돌고래는 지금은 물놀이 쇼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 지금 바다에서는 상어를 중심으로 하는 강경파들이 간혹 사람들을 습격하면서 복수하고 있다는 것 등을요. 하루는 미역이 소에게 물었어요.


"우리 종족은 그래도 아직 살아 있으니까 다행이야. 하지만 너는 억울하지 않니? 너의 모든 가족과 친구들을 잃었는데 말이야."


그러자 바다소는 희부연 눈물을 우러내며 말했어요. 미끌거리는 눈물에서는 구수한 슬픔의 맛이 느껴졌어요.


"그러니까 너와 내가 이렇게 함께 있는 거잖니. 그들이 태어난 때만이라도 우리를 기억하라고. 바다의 목구멍을 통과하는데 바다가 그러더라. 바다와 땅이 이어진 것처럼 삶과 죽음은 하나라고. 그들의 삶을 축하하는 순간에 우리의 죽음을 인지한다면, 그렇게 마구잡이로 살지는 않을 거라고 믿어. 그리고 그러지 못한다면 이렇게 될 것이 분명해. 언젠가 저들이 아닌 누군가가 이렇게 시작되는 글을 쓰리라는 것."


'먼 옛날, 지구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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