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의 진짜 마음
제주에 사는 걸 우리 가족 다음으로 좋아하셨던 분들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친정 부모님. 우리 부부, 특히 신랑이야 틈만 나면 제주에 가는 사람이었지만, 두분은 달랐습니다. 국내 여행지 중 가장 멀리 가본 곳이 집에서 3시간 남짓한 강원도나 충청도였으니까요. 그런데 딸이 바다 건너 제주에 살겠다니. 두 분도 처음엔 무척 놀라셨을 겁니다.
“엄마, 아빠는 비행기만 타세요. 최고의 가이드가 공항 픽업에서부터 숙식까지 해결해 드릴게요.”
육아를 하느라 아직 가본 곳이 많지는 않았지만, 친정 엄마 아빠께만큼은 최고의 제주도 가이드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것도 현지인만이 아는 길과 맛을 아는 ‘찐’ 가이드로요.
공항에서 마주한 부모님의 표정은 아기를 안고 제주에 첫 발을 디딘 제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늘씬한 야자수, 하늘과 맞닿아 일렁이는 윤슬, 하얀 포말을 깨뜨리며 달려왔다 다시 달려나가는 파도, 해안도로 옆 검게 웅크린 현무암에 눈을 떼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좋다, 깨끗하다, 멋지다.”
부모님은 연신 감탄을 쏟아내셨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그쵸? 저 꽃은 더 예뻐요. 제주에는 유채꽃만 있는 게 아니더라니까요?”라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심지어 “엄마, 아빠도 노년을 여기서 저희랑 함께 보내세요”라는 말까지 보탰습니다.
동네에서 가장 맛있다는 갈치조림집에 모셨을 때였습니다. 아빠가 뽀얀 갈치 살을 발라내며 물어오셨습니다.
“그래, 여기 사니까 좋니?”
“응, 엄청 좋아요.”
엄마도 무 한 토막을 집어 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양념이 맛있으니 무조림까지 맛있네.”
“그쵸?”
“그래. 그럼 언제까지 살 거니?”
“평생?”
그 순간, 엄마는 물 한 컵을 찾으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가 창밖을 보며 말하셨습니다.
“제주에는 쓰레기통이 없니? 길에서 못 본 것 같아.”
“그러네요. 관광지라 그런 걸까요? 봉사하시는 분들이 꽃도 심고, 쓰레기도 종종 주우시더라고요.”
“그렇구나. 저 차도 ‘허’ 넘버네.”
‘허’. 정확히 말하면 ‘하’라고 적힌 번호판을 단 렌트카였습니다. 제주를 찾는 여행객 네 명 중 세 명은 차를 빌린다고 합니다. 예전 같으면 우리도 렌트를 했겠지만, 이제는 자가용으로 제주를 달립니다. 육지에서의 삶이 부모님의 렌트카 회사에서 차를 빌려 사는 듯한 삶이었다면, 지금은 내 회사에서 내 삶을 운전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옆 차선의 ‘호’ 넘버를 가리키며 장난을 쳤다.
“저 차도 렌트카네요. 우리 차도 넘버를 ‘하’로 바꿀까요?”
말하고 나니, 엄마의 이번 여행은 렌트카처럼 언젠가는 반납해야 할 시간표를 품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엄마는 창밖을 더 오래 훑으며 쓰레기통을 찾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여행 마지막 날, 공항으로 가는 차 안. 마침내 엄마의 마지막 질문이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휴직 끝나면… 서울 다시 올 거지?”
엄마의 목소리에는 ‘너는 결국 내 곁으로 돌아오겠지’라는 기대와 그늘이 함께 묻어 있었습니다.
휴직이 끝난 이후, 우리는 서울 대신 제주를 택했습니다. 그 시절 친정 부모님은, 우리의 제주행을 정말 우리 가족 다음으로 좋아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그 시절 엄마는 무엇을 걱정하신 걸까요? 무엇을 아쉬워하신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