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서 만난 인성덩어리들
제주 이주 전, 큰 고민거리 중 하나는 어린이집이었습니다. 첫째 아이를 보낼 곳을 찾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대단히 만족스러운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던 덕분에 저의 눈은 많이 높아져 있었습니다.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은 공동육아 어린이집. ‘공동육아’라고 하니까 부모가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건 아닙니다. 부모들이 직접적인 교사의 역할은 제외한 어린이집 운영 전반을 손수 할 뿐이거든요.
유명 연예인이 자녀를 보내는 곳으로 알려진 후,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과거에 비해서는 대중화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어린이집의 수로 치면 1퍼센트를 조금 넘는 비율이기 때문에 보편화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를 이런 다소 희귀한 어린이집에 보냈던 가장 큰 이유는 아이의 올바른 인성과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였습니다.
아침에 등원을 한 후, 아이들과의 회의를 거쳐서 하루의 일과를 정하는 어린이집. 오전 일과의 대부분이 근처의 산이나 들로 향하는 ‘마실’인 어린이집. 아이들의 부모가 ‘아마(아빠엄마)’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어린이집의 일정 대부분에 참여할 수 있는 어린이집. 그 과정에서 아이와 함께 부모도 성장할 수 있는 어린이집. 그런 멋진 어린이집을 그만두는 건 어린이집의 조합원으로서도 차마 힘든 일이었습니다.
조합원으로서의 책임감과 가족의 행복이라는 저울 앞에서 결국 후자의 선택을 했습니다. 함께 한 어린이집 구성원들에게는 진심으로 대단히 미안한 선택이었지요. 그 선택 이후에 남은 건 ‘아이가 과연 이 어린이집보다 만족스러운 곳에 다닐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제주에서 아이를 보낼 어린이집은 몇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린이집은 이미 정원 초과 상태였고 남은 건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었습니다. 다만 우리 아이도 다른 아이들과 동일하게 ‘유치원 입학’을 하는 것이었기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아이들의 텃세’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선택 전의 걱정은 아이를 유치원에 입학시킨 후 몇 주 만에 눈 녹 듯 사라졌습니다.
아이의 하원을 하기 위해 유치원 앞에 있던 중이었습니다. 학교 가방을 멘 채 그 앞을 지나가던 학생이 제게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그것도 90도 직각으로요.
“안녕하세요!”
저도 모르게 반갑게 인사를 해 버렸습니다.
“안녕?"
인사를 하면서도 생각했습니다. 분명 학생이 저를 이 학교의 선생님으로 착각했으리라 여기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살짝 웃으며 진실을 알려주었지요.
"미안해, 그런대 난 여기 선생님이 아니야.”
그 학생은 아니면 어떠냐는 듯 공손하게 웃으며 저를 지나쳤습니다.
그런 인사는 이후 아이를 데리러 가면 이따금 받곤 했습니다. 그러면 저도 더는 어색해하지 않고 인사를 나눴지요.
“안녕! 언니 오빠들!”
제주를 선택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단순합니다. 아이들의 인사성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제가 그들과 어떤 관계이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어른에게라면 환하게 인사할 줄 아는 아이들. 그런 인사성으로 드러난 아이들의 인성은, 그 자체만으로 제주에 머물 이유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