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육아의 시작
“태어난지 한 달도 안 된 애기랑 비행기를 타겠다고?”
친정 엄마의 걱정 앞에서 태연하게 답했습니다.
“응, 다 찾아봤어, 그래도 괜찮대요.”
정확히 생후 25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갓 세상에 태어난 둘째 아이가 비행기를 탄 건 말입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만약 아기를 낳는다면 ‘삼칠일’ 풍습은 꼭 지키고 싶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고 3주 동안은 외부인의 출입조차 삼가며 아기의 건강을 관리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친정 엄마에게 큰소리는 쳤지만, 저 역시 갓난 아기와 비행을 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컸습니다.
‘공항이나 비행기에 신생아에게 치명적인 병균이라도 있으면 어쩌나’에서부터 ‘아기가 비행기에서 울어서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를 주면 어쩌나’까지. 하지만 결국 우리 가족은 생애 첫 비즈니스 석에 탑승했습니다. 단순한 여행이 목적이었다면 결코 감행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팔뚝 크기보다 작은 아기를 강보에 안고 제주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던 건, 이만 '새 집'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족은 구성원이 셋이었을 때에는 경기도민이었지만, 넷이 되고는 제주도민이 되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주민등록번호까지 완벽한 제주도민이 되었고 말입니다. 그날 그렇게 무리해서라도 비행기를 타야 했던 건, 바로 둘째 아이가 태어나는 날이 우리가 제주로 이사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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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후 처음에는 바다를 보기에 바빴습니다.
“와, 바다다!”
건물들로 가려있기는 했지만, 거실 창 밖에 펼쳐진 것은 분명 먼 바다였습니다. 바다와 하늘이 같은 색으로 물들고 그 위로 배가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 배가 바다를 항해하는 건지 하늘을 나는 건지 도통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소설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는 공중 국가 ‘라퓨타’를 이런 식으로 상상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라퓨타는 땅 아래 왕국에서 뿜어져나오는 자기력 덕분에 공중에 떠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자기력이 닿지 않는 6km보다는 높게 떠있을 수 없고, 너무 멀어지면 추락할 위험도 있었습니다. 마치 엄마의 품을 벗어나기엔 아직 이른, 갓난아기처럼 말입니다.
하늘에 있는 라퓨타가 육지인 발비바니 왕국을 통제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발비바니 왕국이 반란을 도모할 경우, 발비바니 왕국의 햇빛을 가려 기근이 들게 하는 것입니다. 이 또한 허기를 채우거나 심심함을 해소하기 위해 엄마에게 울음과 짜증을 보내는 아기를 닮았습니다. 하지만 아기와 라퓨타가 다른 점은, 상대를 통제하기 위해 벌을 주로 내리는 라퓨타와는 달리, 아기는 미소라는 상도 준다는 것입니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상.
“제주에 가니까 어때? 좋은 데는 많이 다녔어?”
제주살이를 시작했을 때 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하지만 둘째 아기가 돌이 되기 전까지는 좀처럼 많은 곳을 가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공중에 떠 있는 라퓨타를 지탱하는 발비바니 왕국처럼, 혼자서는 아직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늦은 밤, 아기를 재우고 밖에 나와 앉곤 합니다. 창밖에는 무수히 많은 빛의 라퓨타들이 있습니다. 달도 뜨지 않은 밤, 그 깜깜함 속에서 하늘과 바다는 이미 한 몸이 된 지 오래입니다. 그런데 조업을 나온 갈치잡이배의 불빛들은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나브로 그 경계가 흐트러져서, 고깃배들은 하늘을 나는 라퓨타들이 되어 있던 것입니다.
자유를 찾아 선택한 제주. 하지만 젖먹이 아기의 엄마에게 ‘자유’라는 말은 조금 먼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기는 라퓨타가 아닙니다. 땅의 에너지에 언제까지나 의존해야 하는 라퓨타와는 달리, 아기는 조금씩 엄마의 힘에서 독립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마치 땅의 힘이 없이도 결국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닮았습니다. 아이들을 비행기처럼 하늘로 독립시키는 것, 나아가 자립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육아의 목표이고 말입니다.
제주는 아이들의 자립을 돕기 딱 좋은 섬처럼 보였습니다. 이 섬의 바람, 돌, 바다, 숲 같은 자연을 마주한 아이들은, 많은 자연물들이 그러하듯 엄마의 손을 놓는 법도 스스로 서서히 배워나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