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 계약할까요?

그때 나는, 나를 선택했다

by 달빛시

“바래다줄까요?”


출근 준비 중이던 제게 신랑이 말했습니다. 조금씩 불러오는 배를 쓰다듬으며 답했습니다.


“노 땡큐, 저한텐 마패가 있잖아요.”


정부에서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대중교통 분야에도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임산부 전용 좌석과 임신부 명찰입니다. 임산부가 아기를 품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둥근 명찰을 우리 부부는 ‘마패’라고 불렀습니다.


진한 핫핑크 색깔의 마패를 검정 가방에 보란 듯이 걸었습니다. 신분당선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지만, 세상에는 선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마패를 보는 사람의 대다수는 ‘여기 앉으세요’라고 하면서 자리를 내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하며 뱃속에 아이에게도 말을 걸었습니다.


‘아기야, 너도 커서 이분처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렴.’


하지만 아름다운 경우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는 시기. 잔뜩 부른 배를 내밀고 서서 출근하기 힘든 날이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런 날이면, 쭈뼛거리면서 임신부 전용 좌석에 앉은 승객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제가 임신 중이라서요.”


그러면 그중 절반은 ‘미안하다’고 하면서 일어나지만 절반은 눈을 감아 버립니다.


인상을 팍 구기면서 “그래서 어쩌라고요?”라고 말을 되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두어 번 거절을 당한 날. 쓴 초콜릿 한 조각을 씹으며 생각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내 아이는 행복할 수 있을까?”


세상은 가능성의 중첩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가능성 중 내가 선택한 것이 결과를 만들고, 또 그 결과를 바탕으로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거실에서 바다를 보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4년 전 했던 선택의 결과이고요.


늘,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서른 중순이 넘도록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둘째 아이를 낳고 나서야 행복에 대해 차분하게 공부하게 된 건, 두 아이를 기르며 내 안의 ‘나’가 점차 흐릿해졌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때부터 살게 된 제주라는 공간 덕분일까요?


제주는 책의 섬입니다. 제주, 특히 제가 살고 있는 서귀포 곳곳에는 크고 작은 도서관이 널려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이 좋아서 갓난쟁이를 안고 제주로 왔지만, 아직 돌도 되지 않은 아기를 안고 늘 숲이나 바다로만 갈 순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만난 곳이 바로 도서관. 그곳에서 한두 권 책을 읽어나가다가 행복에 관한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 최인철 선생님은 행복의 조건으로 ‘자율성, 유능감, 관계’를 꼽습니다. 이는 ‘자기 결정성 이론’을 기반으로 한 개념인데, 쉽게 말해 ‘내가 원해서 사는 삶’이 행복이라는 말입니다.


십여 년간 학교에서 근무해 온 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제가 원해서 교사가 되었고, 하고 싶어서 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학생들의 성장을 돕는 과정에서 유능감을 느꼈고, 점차 돈독해지는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출근하는 동안에는 이 세 가지가 대체로 부재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명문대 입학’이라는 성공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 극한의 스트레스를 견디고 있었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보며 교사의 자율성을 상당 부분 내려놓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남아있던 유능감도 시나브로 소실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남은 것은 학생들과의 관계인데, ‘거리 유지’가 생존의 방법이었던 코로나의 상황은 그조차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출산을 몇 달 앞둔 날. 제주에 있던 신랑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여기 괜찮은 집이 나왔는데 계약할까요?”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아니, 망설일 이유는 백만 개도 넘었지만 무의식이 먼저 대답했습니다.


“좋아요!”


전화를 끊자 갑자기 눈가가 촉촉해졌습니다. ‘나를 위한 선택’은 실로 오랜만이었기 때문입니다.


3년간의 제주살이, 그리고 반 년간의 제주 교사 생활은 저의 행복에 맞닿아 있었을까요? 부분적으로는 ‘그렇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주살이는 때때로 외롭고 여전히 낯설지만, 제 삶을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길은 언제나 갈라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 한 번 ‘나를 위한 길’을 선택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s://ko.m.wikipedia.org/wiki/슈뢰딩거의_고양이#/media/File%3ASchrodingers_cat.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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