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에서 위로받고 있을까?

즐비한 학원 사이, 마음의 진료소

by 달빛시

결혼한 지 수 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들어서는 것을 도와준다는 한약을 짓기 위해 땅 끝 마을에 가기도 하고, 유명하다는 난임 병원의 문도 두드렸습니다. 기초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요가 클래스도 등록했습니다. 그렇게 갖은 고생 끝에 찾아온 아이는, 뱃속에서 하늘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후 우리 부부는 다짐했습니다. 아이 욕심은 이제 그만 부리고 둘이 재밌게 살자고요.


버킷 리스트에 있던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커다란 기타를 양팔로 품어 안았습니다. 왼손으로는 코드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기타의 배를 쓰다듬었습니다. 학교에 있는 아이들과의 관계도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제 아이를 잃고 나니,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십수 년을 살아온 아이들이 더욱 귀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선 아이들을 품고, 학교 밖에선 기타를 품었습니다.


몇 달 후, 생리가 끊겼습니다. 생각지도 않던 아기가 다시 찾아온 것입니다. 어렵게 온 아이를 마침내 출산까지 하니, 이 보물을 누구보다 잘 키우고 싶었습니다. 3년 가까이 육아 휴직을 하고 학군지 언저리로 이사를 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육청을 옮길 때 동료 교사가 했던 말 - ‘샘도 이제 대치동 입성하시는군요’ - 을 1초 간 상상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학군지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 특목고와 명문대를 그렇게 많이 진학하는 걸까? 아이들은 어떻게 공부할까? 부모든을 어떻게 아이들을 돌볼까?


이런 질문을 해소하기 위해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봐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임 첫 날 들었던 어느 선배 교사의 말에 생각을 닫았습니다. “현실은 더 심해. 직접 부딪혀봐.”


‘그래, 내 아이들인데, 더 이상의 선입견 없이 나의 시각으로 보자.’는 마음으로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코로나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속사정들까지 깊이 알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일과에서 학원과 부모가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일과의 정점에는 ‘명문대 진학’과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냉수 마시듯 ‘공부는 학원에서만’이라는 결론을 낼 순 없었습니다. 학군지의 교사들은 그동안 근무했던 그 어느 지역의 공교육 교사보다 많은 업무와 수업 연구량을 해치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지하철 한 정거장을 더 걷게 되었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그곳에는 ‘대한민국 1타 학원’들이 즐비해 있었다. 마치 바위에 붙은 따개비처럼 건물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학원 간판들 사이, 이질적인 간판들이 간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름 아닌 소아정신과. 학생 유동인구가 많으니 소아청소년과나 어린이 전용 치과 등도 있을 법했습니다. 하지만 유독 자주 눈에 들어오는 건 소아정신과 간판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얼마나 아픈 걸까요? 저는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아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요? 그러던 중 생리가 다시 끊겼습니다. 시나브로 불러오는 배를 안고 학교에 가면서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물론, 뱃속의 포함한 나의 두 아이도 모두 행복하게 자라면 좋겠다.'


마침, 제주에 가있던 신랑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집이 하나 나왔는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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