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곡한 사교육 대체 프로그램
“언니, 이런 게 있는데 같이 할래?”
제주 생활을 하며 새로운 지인들도 하나둘 생겼습니다. 주로 큰 아이의 친구 부모였습니다. 그중 종종 좋은 정보를 보내주는 엄마가 있습니다. 그녀가 알려주는 건 학원 커리큘럼이나 특강에 대한 정보가 아닙니다. 다름 아닌 도서관, 읍사무소, 청소년문화의집 같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들입니다.
그녀의 정보는 종류도 다양합니다. ‘케이크 만들기 1일 체험’ 같은 짧은 프로그램도 있었고, ‘1년간 미술 수강’ 같은 본격적인 교육도 있거든요. 놀라운 건 프로그램 체험료가 대부분 무료이거나 회당 1만 원 안팎이라는 점입니다.
1년짜리 미술 프로그램을 신청하면서, 지인에게 슬쩍 물었습니다.
“덕분에 아이가 매번 좋은 걸 배우게 되네, 정말 고마워! 그런데 이런 정보들은 어떻게 알아 오는 거야?”
그녀는 서귀포 시청 홈페이지 같은 몇 개의 목록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녀는 작년만 해도 이런 프로그램 덕분에 학원비를 이백만 원 이상 아꼈다고 했지요. 하지만 제가 더 놀란 건 돈의 액수 때문이 아니라, 조금만 부지런하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배움의 통로가 이토록 다양하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도 가끔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며 강좌를 검색했고, 지난 여름에는 아이를 한 달간 수영 특강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모든 걸 공공 프로그램으로 채울 수는 없었습니다. 피아노 학원은 1년 넘게 다녔고, 지인 추천으로 미술 학원도 6개월 남짓 경험했습니다. 유치원 때에는 보드게임으로 진행되는 수학 학원에도 짧게나마 보내본 적이 있고요.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사는 곳, 이주 초창기보다 조금 더 시골에 가까운 이 동네에서는 아이가 받고 있는 사교육이 ‘제로’입니다.
그렇다고 아이가 배움에서 멀어진 건 아닙니다. 오히려 학원 대신 다른 얼굴의 배움을 찾았습니다. 학교 수업에 잘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엄마와 함께 매일 10분씩 문제지도 풉니다. 방과후학교도 꼬박꼬박 찾아듣고, 듀오링고나 칸 아카데미 키즈 같은 AI 기반 강의를 가볍게 활용하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겐 놀이처럼 보일지 몰라도, 저는 아이가 그 과정을 통해 무언가를 익히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아이에게는 자유 시간이 늘었습니다. 혼자 방에서 뒹굴거리고, 종이에 끄적이고, 책을 읽고, 동생과 씽씽이를 타고, 역할 놀이를 하고, 뭔가를 만들고. 그 순간들은 지금만 누릴 수 있는 시간이고, 조금 더 자라면 잃어버릴지도 모를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유. 아이에게 그 시간을 지켜주고 싶다는 바람이, 저를 제주에 머무르게 한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