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책의 섬
제주에는 키즈 카페가 없습니다, 아니 적습니다. 특히 제가 살고 있는 서귀포에는 더더욱요. 서울에서 첫째를 키울 때에는 키즈 카페는 물론 아파트 단지마다 꾸려진 육아놀이터들을 많이 이용하곤 했습니다. 근처에는 크고 작은 미술관이나 박물관도 많았고요. 오늘은 A 키즈카페, 내일은 K동의 육아놀이터, 모레는 W동의 놀이실, 그 다음날은 B 미술관 같은 식으로 아기를 데리고 날마다 외출하며 육아의 고됨을 덜곤 했습니다.
갓난아기였던 둘째가 서서히 자랐습니다. 키즈 카페 같은 곳이 적은 여기에서는 어찌해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되었고요. 그러던 중 표지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중앙도서관. 아기를 아기띠로 안고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도서관 게시판에는 생각보다 많은 프로그램들이 있었습니다. 젖먹이인 둘째가 참여하기엔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첫째 나이대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성인과 어린이가 함께 사용하는 도서관이었지만, 한쪽에는 아이들에게 소리를 내어 책을 읽어줄 수 있는 공간도 있었고요. 책장을 넘길 때마다 흘러나오는 바스락거림, 아이의 호기심어린 눈빛은 키즈카페에서의 시끄러운 음악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도서관을 둘러본 저는 다른 도서관도 찾기 시작했다. 멋진 미술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삼매봉 도서관, 스포츠센터와 함께 운영되는 서부도서관, 서귀포 앞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동부도서관, 서귀포 구시가지 중앙에 위치한 서귀포 도서관, 감귤밭과 동백꽃들에 포근하게 둘러 싸인 제남도서관, 어린 시절 TV에서 봤던 프로그램에서 만든 어린이 전용 기적의 도서관…. 작은 지도 위에 점이 찍히듯, 저와 아이의 일상은 그 도서관들을 따라 이어졌습니다.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도서관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시내 곳곳에도 ‘작은 도서관’이라는 이름의 공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알고보니 작은 도서관 한 개는 집에서 2분 거리에도 있었고요. 가장 독특했던 건 주 1회, 30분 가량 마을에 들어오는 도서관 버스였습니다. 작은 버스를 개조해 만든 이 버스가 들어오면 두 아이와 함께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버스 문이 열릴 때마다 밀려 나오는 종이 냄새와 아이들 웃음소리가 주차장 전체를 도서관으로 바꿔 놓는 듯했지요.
둘째 아이가 자라자 가끔은 제주시에 있는 도서관으로 나들이를 갔습니다. 어린이 도서관인 별숲 도서관, 제주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한라도서관, 별숲 도서관 옆의 제주도서관은 그 자체로 새로운 관광지였습니다. 책장 사이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여행지에 온 듯 설렜고요.
서울에서의 육아가 ‘놀이기구’와 ‘시설’에 기대는 것이었다면, 제주에서의 육아는 ‘책장’과 ‘이야기’에 기댄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건 놀이방의 노랫 소리가 아니라, 책장을 넘기는 손끝에서 싹트는 호기심이라는 걸 시나브로 제주에서 배워 나갔습니다.
제주에서의 육아가 서울에서보다 조금 더 가벼웠던 건, 주변 곳곳에 있는 도서관 덕분이었습니다. 책 향기가 넘실대는 이 섬에서, 저는 아이들과 함께 더 오래 머물고 싶어졌고요. 책섬 제주의 도서관은 우리 가족이 이곳에 남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