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예술의 섬 제주
“토나리노 톳토로 톳토로~”
매일 아침, 우리 집은 토토로의 숲이 됩니다. 두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의 엔딩송이 기상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토토로를 부르는 제 목소리에 딸들은 메이와 사츠키가 된 듯 눈을 비비며 일어납니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하루를 여는 순간, 딸들의 얼굴에서 잠은 후다닥 달아납니다.
가끔은 오리지널 대신 다른 버전의 곡을 틀어 주기도 합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춤추는 지휘자’ 백윤학 선생님의 공연 영상입니다. 처음에는 귀를 깨우려고 찾았다가, 지휘자의 춤사위에 단번에 눈을 빼앗겼습니다. 우스꽝스럽게만 보였던 동작은 사실 음악에 모든 걸 쏟아붓는 몸짓이었습니다. 이제는 웃음보다 경건한 마음으로 그분의 지휘를 보게 됩니다. 온몸으로 음악을 전하는 그의 모습은 제게 ‘예술에는 삶을 북돋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웁니다.
음악만 그럴까요. 샤갈의 작은 판화 한 점에도, 헤밍웨이의 한 문장에도, 상대를 일으키는 힘이 숨어 있습니다.
며칠 동안 영상을 함께 보던 신랑이 불쑥 말했습니다.
“서울 갑시다. 이분 공연 보러.”
굳이 비행기를 타야 하나, 하면서 검색을 해보니 역시 제주에는 공연 일정이 없었습니다. 서운한 마음이 스며나오면서 ‘제주는 문화의 불모지인가?’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하지만 재빨리 고개를 저었습니다.
“제주에서는 공연도 못 보고 답답하지 않아?”라는 생각이 들면, 저는 스스로에게 되묻습니다.
서귀포예술의전당는 소프라노 조수미 선생님도 공연을 했어. 시립합창단도 있고, 매년 국제관악제랑 오페라페스티벌도 열리는데?
“공연이나 음악 같은 거 말고, 다른 예술 분야는?”
지금은 휴관 중이지만 이중섭 미술관, 변시지 선생의 작품이 있는 기당미술관, 정방폭포 옆엔 왈종미술관도 있어. 본태박물관, 포도뮤지엄, 그리고 김창열 미술관에 가서는 엄청 감동 받고 왔잖아. 예약제인 수풍석 미술관도 있고, 심지어 저지리엔 ‘문화 예술인 마을’까지 있다고.
“그래도 영화관은 몇 안 되잖아.”
아니, 요즘 누가 영화관만 찾니. 넷플릭스와 유튜브, 게다가 시에서 열어주는 무료 상영회도 있는데.
되새겨 보니, 제주는 결코 문화의 불모지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삶과 더 가까운 자리에서 예술을 만날 수 있는 ‘문화의 섬’이었습니다.
물론 조만간 서울로 가서 백윤학 선생님의 지휘를 직접 감상하고 싶습니다. 그날까지는 이곳에 펼쳐진 문화 요소들을 한껏 누려야겠습니다. 때론 우퍼 스피커와 빔프로젝터에 제 마음과 귀를 맡기고요. 매일 아침 울려 퍼지는 토토로의 노래처럼, 우리 집 작은 공연장은 오늘도 힘차게 문을 열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s://m.mt.co.kr/renew/view_amp.html?no=2014072118242286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