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수람 Nov 28. 2022

돌보지 않는 집은 무너진다

  사람이 나간 자리는 휑뎅그렁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자리에 있던 이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빈 풍경의 적적함은 익숙해진다. 시골에는 빈집들이 많다.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자물쇠가 녹슨 대문에 걸려 큰 집을 지키고 있다. 잠긴 문 안에서 웃자란 풀들은 온 마당을 뒤덮고도 더 뻗을 곳을 찾아 대문 아래로,  담벼락 너머로 비집고 나온다. 집을 오가는 것은 동네 고양이들 뿐이다.


  오래전 외할머니 산소에 갔다가 엄마의 고향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엄마가 나고 자란 집이다. 어릴 적 명절이면 정종이랑 명절 음식, 선물을 들고 외할아버지께 인사드리러 갔던 나의 외갓집. 널찍한 마당에 우물도 있고, 동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집을 둘러싼 산세 덕에 시원하고도 따뜻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가 거처를 옮기고 나서 돌보는 이 없는 집이 되어버린 외갓집은 집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었다. 뒤뜰의 대나무는 무시무시하게 자라 집안으로 뚫고 들어왔고, 마당은 풀과 나무로 뒤덮여 얇게 미장한 콘크리트가 여기저기 조각나 있었다. 대궐 같았던 외갓집이 무너져가는 모습이 꽤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시골에 있는 집이라고 유난스럽게 더 낡는 것은 아니다. 며칠 여행만 다녀와도 사람의 훈기가 사라져서일까. 오랜만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집 안의 식은 공기에 흠칫한 적이 있다. 또 살림을 살고 있는 집임에도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는 이내 먼지가 켜켜이 쌓이고 만다.


  요즘 같은 늦가을이면 온 산의 나뭇잎이 제 소임을 다하고 낙하한다. 알록달록 예쁜 것은 잠시이고, 물기라고는 없는 낙엽들이 바람에 날리고 땅으로 떨어져 금세 마당을 뒤덮는다. 옆집인 시댁과 우리집 마당에도 감나무 잎과 산에서 날려온 낙엽들이 바람에 여기저기 뒹군다. 시아버지는 아침마다 마당 쓰는 일로 일과를 시작한다. 매일 아침 마당에 나와계신 시아버지를 뒤로하고 출근을 하면 괜스레 뒤통수가 뜨끈뜨끈하다. 뒤통수의 뜨끈함은 십 년이 넘도록 제대로 마당 한 번 쓸어본 적 없는 며느리가 가지는 일말의 양심이다.


늘 깨끗한 마당은 시아버지 덕분이다


  비 온 뒤 날이 따뜻해지는 봄이면 마당의 잔디 사이사이로 잡초들이 생명력을 과시한다. 때를 놓치면 잔디는 잡풀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마는데 그때 시엄마는 '일 방석'이라고 불리는 동그란 엉덩이 의자를 차고 풀매기를 한다. 아이들을 돌본다는 핑계로 제대로 풀 한 포기 매 본 적이 없는 내가 일손이라도 거들라치면 시엄마는 손사래를 친다.


"아서라. 손목도 안 좋은 애가 무슨. 나는 햇볕도 쬐고, 운동이라고 생각하면서 쉬엄쉬엄 하니까 하나도 안 힘들어"


  며느리 앞에서 풀매기가 운동으로 둔갑해버린다. "풀 매는 게 무슨 운동이에요. 일이지. 엄마도 참." 따라붙는 며느리의 잔말이 머쓱하다.




  눈은 게으르고 손은 부지런하다고 매일 일거리가 있는 시골 살이에 시부모님은 더욱 부지런해지셨다. 늘 일이 많다 하시면서도 두 분 발걸음 닿는 곳마다 땅이 다져지고, 두 분의 손끝에서 정원수들은 단정해진다. 어느 가을 아침 과실수들의 가지가 무성하게 뻗혀 가지들을 과감히 쳐낸 적이 있다. 높이가 높고 힘을 쓰는 일이라 남편도 일찌감치 나가서 일을 거들었다. 토요일 아침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라 겨우 눈을 올려 뜨고, 느지막이 옷을 갈아입고 장갑을 끼었다. 어슬렁어슬렁 일바지를 입고 나서는 나를 보더니 시아버지가 한 마디 하신다.


"손도 대지 말아라. 일하는 사람 피곤한데 쉬어야지"


  잘린 나뭇가지를 열심히 나르는 남편 눈치를 보며 큼지막한 가지 하나를 땅에 끌며 옮기니 아빠가 하지 말라고 또 한 소리 하신다. 시아버지가 두 번 말씀하셨으면 여기서 끝이다.


  여름에는 무성하게 가지를 뻗는 차나무 울타리와 잔디도 깎아줘야 하고, 바깥에 둔 목재 데크에는 해마다 방수 페인트도 칠해줘야 한다. 가을에 감을 따먹으려면 감나무에 한두 번 농약도 쳐야 하고, 일기 예보도 수시로 보면서 비나 눈이 내린다고 하면 온 집안 비설거지도 해야 한다. 어느 날은 시아버지가 이런 일들을 우리 부부가 다 할 수 있을까 싶었는지 "나중에 우리 OO이가 다 할 수 있을까?" 하셨다. 아들, 며느리가 행여나 부담이나 될까 시어머니가 한 마디 거들었다.


"아유 우리 젊을 때 생각해봐요. 애들 한창 키울 때 꽃이나 나무가 눈에 들어오던가요? 다 때 되면 하지요. 시간 많은 우리가 하면 되지 무슨 걱정이에요"


  기다리다 기다리다 이제는 나이가 차 꽃과 나무가 눈에 들 때까지도 기다려주시는 시부모님께 죄송하고 감사하다. 이 또한 비질이라도 한 번 해보자는 나의 다짐 글이다. 풀매기나 나무 전정은 못해도 집을 돌보는 소일이라도 찾아 해야지. 돌보지 않는 집은 무너지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응답하라 1990s 그 시절 운동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