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운동회의 계절이다. 시내로 이사 나오기 전 국민학교 1, 2학년 때 가을 운동회가 기억 속에 또렷하게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던 엄마는 카메라를 목에 걸고, 얼린 식혜와 암바사, 돗자리와 3단 도시락을 챙겨 들고 동생 손을 잡고 운동회에 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자리에서는 잔치집에서맡을 법한 막걸리와 풋전,머리 고기 냄새가 풍겼다.동네에 하나 있던 국민학교 운동회로 온 동네가 들썩였다. 구령대를 꼭짓점으로 학교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펄럭이는 만국기는 오늘이 축제날임을알렸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흰색 스타킹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오라고 하셨다. 운동회에 참가하기 위한 옷을 만들기 위해 스타킹은 총 세 개가 필요했다. 하나는 평범하게 바지로 입고, 하나는 발목과 가랑이 부분을 잘라내 상의로 입었다. 나머지 하나는 머리에 뒤집어썼다.(학년별로 스타킹 색이 달랐다) 온몸을 스타킹으로 두른 우리는 체육시간마다 연습했지만 기억할리 없는 동선을 따라 신나게 뛰어다녔다. 선생님이 어깨를 잡으라고 하면 어깨를 잡고 깔깔대고 흩어지라고 하면 흩어지면서 깔깔댔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운동회의 시작을 알렸던 이 오색찬란한 쫄쫄이들의 군무는 '매스게임'이었다. 그때 우리는 어떤 모양을 만들었던 걸까?
옷을 갈아입은 우리들은 학년별로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뽐내며 무대를 꾸렸다. 1학년은 부채춤을 췄는데 태극선 부채 두 개를 양손에 나눠 들고 동요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 부채춤 담당이었는데 일찍 동작을 외운 나와 내 짝을 구령대 위에 세우셨다. <피노키오>와 <아빠와 크레파스> 동요에 맞추어 부채를 흔들며 깜찍한 율동을 뽐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고, 틀릴까 봐 걱정도 됐다. 그래도 구령대 위에 올라 선 내가 꽤 자랑스러워서 무릎도 힘껏 굽히고, 팔도 쭉쭉 뻗었던 기분이 생생하다.
이미지 출처 flickr
2학년 때는 꼭두각시 춤을 췄다. 구성진 가락에 맞추어 남자 친구와 짝을 맞춰 율동을 해야 하는데 그 속에는 인간사 희로애락이 다 담겨있어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아홉 살의 우리들은 엉엉 울었다가 모르는 척도 했다가 같은 방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가 나중에는 등을 마주대고 팔짱을 낀 채 하늘을 보는 고난도 동작까지 해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연의 난이도는 높아졌다. 4학년 때는 삼색 띠를 두르고 방방 뛰며 소고 연주를, 5학년 때는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췄다. 운동회는 온 동네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이만큼 자랐다고 알리는 학예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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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나 소풍날이면 리어카에 온갖 장난감을 싣고 교문 앞으로 오는 아저씨 아줌마가 있었다. 좌판에는 먹어 보고 싶은 불량식품과 세상 재밌는 장난감들이 가득 펼쳐져 있었기 때문에 이런 날에는 미리 용돈을 챙겨 와야 한다. 그렇다고 갖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살 수는 없는 주머니 사정이라 동전을 꼭 쥐고 저 많은 장난감 중에 무엇을 고를지 신중했다. 나는 공기가 든 공을 '푸쉭' 누르면 달리는 말이랑 권총처럼 생겨서 양손에 끼고 방아쇠를 당기면 딸깍딸깍 공이 넘어가며 테니스를 치는 장난감, 오색찬란한 스프링을 샀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은 교문을 지날 때마다 방앗간을 못 지나치는 참새처럼 홀리듯 멈춰 서서 좌판을 한참 구경했다.
본격적인 운동회는 오후에 시작되었다. 양면 머리띠를 이마에 두르고 뛰고 또 뛰었다. 청군은 파란색이 보이게, 백군은 흰색이 보이게 머리띠를 했다. 나는 백군이었는데 친구가 청군이라 다시는 못 만나기라도 할 것처럼 아쉬워했지만 그 마음은 달리기 한 번에 금세 사라졌다. 달리기는 여덟 명인지 열 명인지 꽤 여러 명이 함께 뛰었는데 선생님들은 결승점에서 각자 맡은 아이들을 등수별로 귀신같이 낚아챘다. 선생님한테 손목을 채이는 그 기분이란! 크으, 짜릿 그 자체! 손등에 등수별로 도장을 받으면 도장 찍힌 손을 흔들며 상품을 받으러 갔다. 1등은 공책 10권, 2등은 연필 한 다스, 3등은 공책 3권이었다. 2인 3각, 큰 공 굴리기, 아버지 달리기 등 온갖 달리기가 뒤를 이었다.
혹자는 운동회의 꽃을 줄다리기라고 하지만 나는 '박 터뜨리기'를 제일로 꼽겠다. 선생님이 집에서 콩주머니를 두 개씩 만들어오라고 해서 엄마가 양말에 팥을 넣고 바느질을 해 콩주머니를 만들어 주었다. (나중에는 고무 조각이 들어간 기성품을 팔았지만, 역시 콩주머니는 진짜 콩을 넣어야지 손에 착 감긴다) 어느 선생님이 밤을 새워 만들었을 박을 터뜨려야 하는데 이 콩주머니를 어지간히 던져서는 박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박 속에 뭐가 들었는지 보다 내가 던진 콩주머니로 박을 맞히는 게 더 중요했다. 사실 내가 던진 주머니에 내 눈탱이를 맞기도 했지만 그저 행복했다.
지난 주말 둘째의 유치원 운동회가 열렸다. 3년을 기다린 소중한 운동회다. 둘째의 주황팀은 가족들이 모두 검은색 상의를 입어야 해서 우리는 블랙 군단이 되어 돗자리에 간식까지 챙겨 들고 비장하게 집을 나섰다. 파란 하늘 아래 초록 운동장이 보인다. 만국기가 펄럭인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래. 이거지.
엄마 줄다리기에 나섰다. "영차! 영차!" 어디선가 "누워! 누워!" 간곡히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팽팽한 힘겨루기가 이어지다 균형이 깨졌다! 이쪽이다! 우리가 이겼다!
아이고, 삭신이야. 며칠이 지난 오늘까지도 팔이 후들거린다. 달리기 1등 하던 여덟 살 수람이는 이제 나이깨나 든 중년의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