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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람 May 03. 2022

시골의 봄, 봄나물 이야기 1

  해마다 4 월이면 봄나물들이 지천에서 날 좀 봐주세요 한다. 가장 먼저 고개를 내미는 것은 쑥이다. 시골은 논둑이든 밭둑이든 하천 가든 해가 드는 곳이라면 지천으로 쑥이 퍼져있다. 아무리 게으른 시골 사람이라도 봄이면 눈길 닿는 곳마다 고개를 내민 쑥을 그냥 못 지나친다. 하지만 '언제고 한 번 캐야겠다' 마음만 먹었다가는 금방 못 먹기 일쑤이다. 잎이 뻣세 지기 전에 이파리 뒷면이 보오얗고 야들야들할 때 캐야 하는 데 여차 하면 그 시기를 놓치는 것이다.


  

첫째 아이가 학교에서 쑥을 한주먹만큼 캐서 비닐봉지에 달랑달랑 넣어 왔다. 쑥을 캐러 하천가로 갈 때 누구 손을 잡고 갔는지부터 가위 잃어버린 이야기, 쑥을 캐다가 친구 엉덩이랑 부딪힌 이야기, 벌레를 밟은 이야기까지 한 참 듣고 났더니.


  "엄마 요리해줘. 선생님이 이 걸로 요리해서 먹으래."  


  엽엽하지 못한 손이라 쑥떡까지는 못해주겠고 쌀가루라도 있었으면 어찌어찌 쑥버무리 흉내라도 냈을 텐데 그마저도 없었다. 어쩌지. 입학 후 처음으로 학교 밖을 나와 친구들과 함께 획득해 낸 아들의 전리품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데. 심지어 이 쑥은 곰을 인간으로 만든 영험한 민족의 봄나물 아닌가!






  우선 냉동실에서 국물용 멸치를 꺼냈다. 그래! 멸치 국물 내서 마늘이랑 된장 풀고 슴슴하게 쑥국을 끓여보자. 쑥국을 생각해냈을 때 나를 한 번 안아줄 뻔했다. 이 음식을 생각한 나 정말 칭찬해. 본격적인 요리에 앞서 가장 중요한 '재료 세척'을 시작했다. 한 주먹만큼의 쑥을 물에 헹구는데 가관이 아니다. 씻을 때마다 잡풀이며 잔디가 물 위에 동동 뜨는 것이다. 씻다 씻다 내가 지금 쑥국을 끓이려고 하는지 잡풀국을 끓이려고 하는지 몰라 한참을 웃었다. 조막만 한 손으로 가위질해가며 열심히 잘랐을 생각을 하니 귀여우면서도 어쩜 이렇게 여덟 살 다울까 기특해서 또 웃었다.


  쑥국은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었다. 멸치 국물은 짧게 파르르 끓여서 국물을 맑게 낸 다음 된장을 풀고 끓이다가 마늘을 넣었다. 쑥만 달랑 넣기 아쉬워서 두부도 반 모 숭덩숭덩 썰어 넣고 대파도 조금 넣었다. 얼추 쑥국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크, 이게 10년 차 경력직 주부의 쑥국이다!


"얘들아, 밥 먹자! 엄마가 쑥국 끓였어!"


  아들이 잔뜩 기대에 찬 눈빛으로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넣었다. 일순간 나도 침이 꼴깍! 주부에게 가족들이 내가 한 음식을 맛있다고 해주는 것만큼 큰 행복이 어디 있을까? 아들이 큰소리로 한 마디 외쳤다.






"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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