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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람 Dec 27. 2022

산타는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할아버지. 파벌도 종교도 어떤 정치색도 개입하지 않는 유일한 인물. 산타가 그 주인공이다. 크리스마스이브를 준비하면서 산타가 북극 한파를 뚫고 루돌프와 출발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산타...... 코로나 음성"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는 내내 미소가 지어졌다. 해당 기사의 일부분을 옮겨 본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날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의 대변인인 벤 와이즈먼 미군 상사는 “우리는 ‘극소용돌이’ 현상을 아주 가끔 마주하지만, 북극에서 일 년 내내 지내는 산타는 이런 날씨에 익숙하다”며 무사히 비행을 마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산타가 비행 계획서를 군 당국에 공식 제출하지 않는 만큼 정확한 이륙 시간과 경로를 확인할 수는 없다”라면서도 “썰매를 끄는 순록들의 대장인 루돌프가 반짝이는 빨간 코에 불을 켜면 군인들이 적외선 감지기로 위치를 감지한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와이즈먼 상사는 미국과 캐나다의 전투기 조종사들이 북미 상공에서 그를 호위하면, 산타가 썰매 속도를 늦추고 손을 흔들어 화답해준다고도 덧붙였다.

기사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018/0005393506


  국민학교 2학년 때인가 꽤 머리가 굵었음에도 산타의 존재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우리집은 아파트라 굴뚝이 없어서 할아버지가 못 들어오시면 어쩌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친구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모두 전하고, 꽤 비싼 입체카드 하나를 남겨두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쓰기 위해서였다. 어디로 보내야 할지를 몰라 침대 머리맡에 카드를 펼쳐 두었다. 혹시 양말을 안 걸어두어서 선물을 못 받을까 봐 가장 큰 양말인 아빠의 기다란 목양말을 창문에 붙여두었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때 창가의 차가운 공기 아래 덩그러니 걸려있는 양말을 보고는 조금 울었다. 아이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기분 좀 내주면 좋았을 텐데.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엄마 아빠는 동심을 지켜주는 일보다 실속을 택했다. 그러고는 어차피 사야 할 새 학년 준비 물품을 사면서 "이게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했다. 


  다음 해에는 우리집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없어서 산타가 안 오는 것 같다고 트리 만들어달라고 했다. 엄마랑 문방구에 가서 솜이랑 전구, 반짝이 모루를 사 와 집에 있던 고무나무를 정성껏 장식했다. 윤기가 도는 타원형의 넓적한 이파리에 솜을 한 뭉치씩 떼어 얹었다. 열대지방의 나무로도 멋진 트리를 완성했다. 밤이 되면 캄캄한 거실에서 반짝이는 트리가 자꾸만 보고 싶어서 문을 열고 잠이 들었다. '착한 일도 많이 하고, 엄마 아빠 말씀도 잘 듣고, 이제 반짝이 전구가 달린 트리까지 있으니 산타 할아버지가 절대 안 지나치시겠지?' 그 해에도 산타는 오지 않았다. 


  이후로 어느 정도는 포기하는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맞았고, 역시나 선물이 머리맡에 놓여있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12월 25일 아침은 늘 맥이 빠진 채 시작했다. 상상과 선택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옮겨오는 동안 제법 어른스러운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해마다 실망했던 마음이 마음 깊은 곳에 켜켜이 쌓였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못 받는 어린이가 느꼈던 외로움과 서운함이 살아났다.




  엄마가 되어 맞는 크리스마스는 일찌감치 포기를 배워버린 어린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기회였다. 산타는 해마다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집에 나타났다. 어느 해에는 지붕 위로 날아가는 순록을 포착해서 찍을 수 있었고, 어느 해에는 현관문이 잠겨서 창문을 열고 들어 온 산타할아버지와 마주쳤다. 굴뚝이 없어도 산타는 어떻게든 집 안으로 들어와 선물을 두고 갔다. 올해는 문소리가 들려 뒤늦게 뛰어 나가느라 할아버지 뒷모습만 겨우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이브 밤이면 선물을 못 받을까 봐 조마조마했다가도 또 은근히 기대했고, 나중에는 말썽 부렸던 지난 시절을 반성하며 참회하기에 이르렀다. 트리 아래에는 고사리 손으로 쓴 편지와 함께 추운 겨울밤 선물을 배달하는 할아버지를 위해 따뜻한 커피와 쿠키를 놓아두었다. 세상 모든 어린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할아버지라면 보고 그냥은 지나칠 수가 없는 정성이다.



  12월 24일 저녁.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첫째와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 어떻게 산타할아버지 혼자서 그 많은 집에 들르는 걸까?"

  "엘프들이 돕겠지. 엘프들이 평소에 아이들 다 지켜보고 있잖아. 그리고 산타한테 정보를 주는 거지"

  "나는 산타가 한 명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 엄청 많은 산타가 있어서 자기가 담당하는 나라 배달을 가는 것 같아."

  "그럴 수도 있겠다. 올해 선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오십 프로 같아. 말을 조금 안 듣긴 했어서. 솔직히 자신은 없어


  다음 날. 딸아이가 평소보다 더 일찍 눈을 뜨고는 방문을 빼꼼히 열어 본다. 트리 아래 놓인 선물을 확인하고 나에게 달려온다. 


"엄마! 할아버지가 선물을 놓고 가셨어!"

"정말? 축하해. 우리 동글이 좋겠다"

"잠깐만 기다려봐. 할아버지 쿠키랑 커피 드셨나 보고 올게. (잠시 후) 엄마! 할아버지가 쿠키는 반 만 드시고, 커피는 다 드셨어!"

"그랬구나. 할아버지가 간식까지 준비되어 있어서 정말 좋아하셨겠다"


  인기척에 첫째까지 깨어나 선물을 확인하고 덩실 춤을 춘다. 춤사위를 보니 올해는 정말 못 받을 줄 알았나 보다. 아이들이 선물의 포장을 벗겨내는 내내 나는 아이들의 얼굴만 본다. 환희에 찬 표정. 선물을 하나씩 열 때마다 터지는 환호성. 어린 시절의 내가 그토록 바라고 기다렸던 순간이다. 저렇게 좋을까.


  12월 25일 인터넷 기사에 따르면 올해 산타는 대한민국 상공에 약 7분간 머물렀다고 한다. 7분 동안 집집마다 들러 선물을 두고 가셨다. 그 집 아이가 올해 많이 울었든 안 울었든 착한 일을 했든 안 했든 집에 트리가 있든 없든 그런 건 다 상관없다.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할아버지는 어떻게든 집안으로 들어가서 선물을 놓아둔다.


  아이들이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설레고 긴장되고 벅차게 행복했던 이 마음을 떠올리기를 바란다. 살다가 힘든 일이 생기면 그 때의 행복을 조금 떼어다 꺼내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결하게 순수했던 그 시절의 자신도 기억했으면 좋겠다. 혹 나이가 들어 기억을 못 하게 되더라도 내가 오래도록 곁에 머물며 너희가 그랬노라 증명해주고 싶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산타는 정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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