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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람 Nov 03. 2022

너는 내 품을 떠날 준비를 하고

엄마는 시간을 붙잡고 싶다

  전부터 지나가는 아이를 보면 인사라도 한 번 건네는 성격이었다. 아이들의 보얀 볼을 보면 쓸어보고 싶고, 꼭 쥔 작은 주먹에 검지 손가락을 잡히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어쩌다 아이들과 함께 지낼 일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서 놀아주는 괄괄한 이모였다. 결혼 후, 따로 엄마 될 준비를 유난스럽게 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지를 떠올리면 두근거리고 설렜다.


  아이를 낳고 처음 안았을 때, 저도 사람이라고 조그마한 몸에 모자란 것 없이 다 갖추고 있는 것을 보며 기특함에 미소 지었다. 품에 안겨 힘겹게 눈을 뜨고 배냇짓하며 웃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꼬순내도 실컷 맡고, 부드러운 볼도 만져보고 싶다. 아이가 잠들면 잠든 얼굴을 보며 혼자 감격해 울다가 웃다가 나중에는 발꿈치를 앙 물었다. 한 번도 땅을 밟아 보지 않은 촉촉하고 반들반들한 발꿈치는 뽀뽀를 불렀다.


  기다가 앉았고, 서더니 걸었다. 인류 진화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직립보행이라는 과업을 해내기까지 나는 아이의 걸음마 보조기가 되었다. 넘어질 듯 말 듯 위태위태하게 걸음을 떼던 아이가 드디어 내 손을 놓고 발을 내디뎠을 때, 아이는 내 품에서 조금 멀어졌다. 장신구나 마찬가지였던 신발이 땅을 디디며 드디어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작아도 신발이라고 제법 때가 탄 밑창을 보며 웃음지었다. 아장아장 잰걸음을 걷던 조막만 했던 발이 이제는 220mm 운동화를 신는다. 그 운동화에서 막 빠져나온 발 냄새는. 오우 스멜. 어젯밤에는 잠든 아이의 발꿈치를 만져 보았다. 제법 단단하고 도톰하다. 이제 이 발로 온 세상을 누비겠구나.




  어린아이들에게 종일 부대낀 엄마는 당이 필요하다. 당이 가득한 간식은 구석진 곳에서 한 입에 넣어야 한다. 엄마에게 필요한 것은 스피드! 그런데 왜 간식 봉지들 죄다 요란하게 부스럭거리는. 아이는 귀를 쫑긋거리며 부엌으로 달려와 묻는다. "엄마 뭐 먹어?" 하더니 턱을 잡고 입을 열어 확인하려고 한다. 입안 가득 품은 초코의 향기가 날숨에 들키기 직전이다. 일촉즉발의 순간. 엄마는 기지를 발휘한다. 화려한 과자 봉지를 가져와 빨간 부분과 글자를 짚으며 "이거 봐, 여기 '매. 운. 맛'이라고 써있지? 이거 매운맛이라서 OO는 못 먹어"했다. 엄마와 아빠는 그렇게 둘이서 온갖 매운 음식을 먹었다. 글을 모르는 아이를 속이는 졸렬한 거짓말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간판의 글자를 읽기 시작했다. "다.... 이.... 소?" "하.. 이.. 마.. 트?" 받침 없는 글자를 읽기 시작하더니 이내 한글을 깨쳐버렸다. 왜 엄마 아빠가 먹는 것은 죄다 매운맛인 건지 궁금했던 걸까? 아이는 간판을 넘어 과자봉지에 쓰인 말들도 일순간에 읽기 시작했다. "여기 바비큐 맛이라고 쓰여있는데?" "포카칩이 뭐야? 이거 매운맛이 아닌데?" 그렇게 매운맛의 시대는 저물었다. 헉, 이제 어쩌나.




  다행히도 아이에게 뺏기지 않은 하나가 남아 있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시간을 지배하는 닥터 스트레인지다. 집집마다 있는 시간의 마법사들은 보통 아침에 시간을 늘린다. "여덟 시야. 얼른 일어나!" 분명 시침은 7을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 반대로 해가 지면 시간은 점점 빨리 가기 시작한다. "벌써 10시야. 얼른 누워야지. 일찍 일찍 자야 키 큰다." 가끔 양심 없는 닥터 스트레인지들은 두 시간이나 후려치기도 한다. (어머님 두 시간씩 후려치는 건 좀)


  시계는 아이와 약속을 정하기 좋은 장치였다. "긴 바늘이 12에 갈 때까지만 보는 거야" 이 말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 아이가 어느 날은 시계가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10분만 더 하자"라고 하면 그 10분은 5분으로 변해 금세 게임을 그만둬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이미 매운맛을 빼앗긴 시점에서 시간마저 빼앗기면 엄마의 영향력은 시시해질 게 뻔했다. 따져보면 시계는 12진법과 60진법이 조합된 고도의 수학적 장치가 아닌가. '이제 겨우 100까지 셀 줄 아는 아이가 시계 보기를 깨칠 리 없지'하며 안심했다.


  문제는 유치원이었다. 일곱 살 2학기가 되자 입학 준비를 하면서 시계 보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내가 아이를 쉽게 봤을까? 정각의 시각을 읽더니 곧 숫자가 하나씩 커질 때마다 5분씩 늘어난다는 것마저도 알아버렸다. 오. 마이. 갓. 어느 날 아침 "OO아, 벌써 8시야. 유치원 가야지" 했을 때 벌떡 일어나 눈을 크게 뜨고 "엄마, 아직 7시인데?" 했던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조금 비열했던 닥터 스트레인지는 시간을 늘리고 줄이는 능력을 잃고 말았다.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됐을 때와 그네를 혼자 타게 됐을 때는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더 이상 뒤에서 잡아 주고 밀어주지 않아도 되니까 편해서 기뻤다. 줄넘기를 혼자서 넘을 줄 알았을 때는 언제 이렇게 컸나 울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먼저 달려와 뽀뽀를 퍼붓지 않고, 길을 걷다가 친구들이 보이면 잡은 손을 슬그머니 빼기 시작한다. 학교나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과 따로 약속을 잡기도 한다. 내가 모르는 아이의 시간에 아이는 쑥쑥 자라고 있다. 내 품을 벗어나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아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늘어나는 만큼 엄마가 아이 곁에 머무는 시간은 줄어든다. 힘을 빼고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봐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박혜란 작가 "아이를 손님처럼 대하라"고 하는데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을 먹는 게 쉽지가 않다. 어리석은 엄마는 훌쩍 커버린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흐르는 시간을 붙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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