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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an KIM Sep 25. 2018

[ESC] (23) 회복

올해 8월 말, 회사 워크숍에 다녀온 후, 내 인생을 조이던 모든 나사가 풀려버렸다. 골프도 운동도 독서도 다이어트도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고, 모든 집중력과 기억력과 사고력과 이해력이 눈가루처럼 흩어졌다. 문장도 순간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핑계는 여럿이었다. 주택담보대출과 새로 이사갈 집 인테리어에 온 신경을 쏟느라? 팔자에도 없는 회계를 새로 배우고 있어서? 솔직히, 다 개소리다.


나의 9월달 저녁은, 거실 바닥과 하나가 되어 ASPHALT 9이나, KAIRO GRAND PRIX을 해대던 나날이었다. 사실 저녁에 시간만 나면 게임을 해댔다. 마치 무언가로부터 달아나는 것처럼. 게임보다 먼저 중독됐던 것은, 인터넷이었다. 운동과 독서가 귀찮아지자 모교 커뮤니티와 '무한유머'와 '유투브'가 내 삶을 파고들었고, 항시 인터넷에서 눈과 귀를 떼지 못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중독은 회피다. 내 삶에 산적한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치지 못하니 다른 것으로 회피하려 하는데, 바로 그 다른 것에 몰입하고 중독된다.


그럼에도, 나는 그렇게 동굴에 파묻히는 기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 그렇다. 나만으로도 벅차던 시간을 지나 쌀랑쌀랑 싸락눈이 들이치는 문창을 어느새 관찰하게 되는 것처럼, 동굴에 피신한 시간 동안 점점 밖을 갈망하며 또 관망하며 동굴 밖 삶을 더 귀하게 곱씹게 된다.


아직도 중독에서 벗어나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이 이 끝나갈 즈음에는 중독은 가라앉고 새로운 내가 남아 새로운 날을 살 것임을 확신한다.


그 새로운 사람은, 튼튼한 몸으로, 핵심을 짚어내고, 똑똑하게 처리하고, 기본기가 탄탄하며, 체력을 쓸데없는 곳에 낭비하지 않고, 지식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집중력 있는 독서로 소양을 계발하여, 부드러우면서도 깊이있는 말과 글, 사려깊은 품행으로 주변의 귀감이 되는 사람일 것이다. 처자식에게는 애정 깊은 남편이자 아버지이고, 부모님에게는 도리를 다하는 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피로로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릴 수도 있고, 목과 어깨가 망가질 수도 있다. 하지정맥류로 다리에 시퍼런 혈관이 돋을 수도 있다. 표정관리를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세상에 무언가를 만들어 놓고 싶다. 나의 전공이든, 글이든 내가 생산한 무언가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 좋다는 말을 듣고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참조하고 사용할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 지금은 그 조각을 수집하고 조금씩이나마 맞춰나가는 단계다. 


이렇게, 나는 회복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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