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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i Mar 31. 2024

결국에 남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요즘이다.

예전에 한남동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났다. 그 때 당시에 서로 어느정도 의지했던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과 내가 많은 것들과 인연을 끌어당겨서 있었던 만남이었는데 생각보다 배울점도 많았고 아픈 점도 많았고 결국에 좋은 작업자 두명으로 남아서 여전히 교류를 하며 좋은 친구가 되었던 것 같다. 그 때 서로의 말들을 공유하며 엉엉울면서 포옹하기도 했는데, 그 때는

머리가 멍해질 것 처럼 아팠던 그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가끔씩 본인이 느끼는 세상에 대해서 말한다. 한 프로젝트에서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느낀점을 풀어내는 작업을 했는데, 내 의도와는 다른 점들도 참 많았다.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양하듯 삶을 바라보고 느끼는 방식도 정말 다양하다.


나는 이제 누군가를 설득하지도 않고 상황을 통제하지도 않고 사물이나 사람을 끌어당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직감이 발달된 편이라서 어떤 생각이나 혹은 인연을 끌어당기고 싶으면 그것에 집중해서 나에게 자동적으로 오게끔 끌어당기는 방식을 어렸을 때부터 행하곤 했다. 그래서 원하는 것, 이상형, 사물 기타 등등을 나에게 오게끔 했는데, 끌어당기는 건 쉬워도 사실 그 사물이나 사람이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이라면 결국에는 원점이 되어 날 떠나가거나 내 생활에서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오늘 연구소에 회신해야 하는 작업들을 편집하다가 문득 내가 만든 마지막 구절의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 곱씹어 보았다.


나는 사실 장소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보고 싶었던 말이었는데 실은 인연에 대한 연결성이 더 큰 지문이었다.


“une âme choisit sa compagnie”

영혼이 자신이 있는 곳을 선택한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인연에 대한 해석으로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했다.


요즘엔 무언갈 끌어당기지 않는다.

그냥 나의 것들을 받아들인다.

수동적으로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에게 주는 선물들에 대해서 보살피고, 그것들이 나에게 더 자연스럽게 빛날 수 있도록 변형시키고 꾸미고 한계없이 사랑해준다.


모든 상처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라보면 치유된다. 너무 큰 것들은 돌덩이 같아서 한 번에 불가능한 것도 있지만, 한 비극적인 사건이나 혹은 아픈 상황 속에는 치유가 담겨 있다. 비슷한 상처들이 트리거가 되어서 나에게 나타나지만 결국 가장 혼란스러운 상황 뒤에는

가장 말끔한 평화가 있다. 마주볼 수 있는 사람은 그 평화를 만끽하고, 마주보기 겁나하는 사람들은 그 위에 또 다른 상처의 층들을 덮어버려서 회피하고 더 큰 업장을 만든다.


결국 평화는 말끔하고 미니멀하고 깨끗하고 투명한 반면에,

상처를 회피하고 비극으로 치부하는 마음은 악한 것이

아니라 좀 더 화려하고 거짓되고 여러 갈래의 층이

있으며 진실이 무엇인지 헷갈리고 여러가지의 방향과 길이 있고 복잡하고 까다롭고 속이고 속는 미로로 이루어져있다. 감출 수록 더욱 더 많은 것들이 쌓여 나가고 그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본인을

상실하는 것 같은 절망감을 느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보석은 언제든 사라지진 않는다. 다만 발견하기만 하면 되는데

많은 이들은 그걸 잘 못 한다.


나는 누군가를 도와주는 걸 좋아한다. 도와준다는 건 그냥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건 누군가를 잡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단점을 고치려 하는 것도 아니고 상처를 치유해주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건 누군가를 놓아주는 것이고, 누군가의 단점을 그냥 그대로 온전하게 보면서, 아무렇지 않게 ‘원래 저런 사람인가보다.’ 하며 판단없이 넘기는 것이며,

상처를 치유해주려고 하기 보다는 지켜봐주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치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온전히 나 자신을 내려놓고 스스로의 자아의 죽음을 고대하며 상대방의 아픔에 저항하지 않는 것이다.


그건 작은 나의 죽음이자 새로운 나의 발견이다.

아토포스라는 개념인데, 이전에 읽었던 사랑의 단상에서 나온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큰 사랑은 나를 버린다. 그리고 상대방을 통하여 진짜 나를 발견한다.


요즘에 나는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성도 아니고 특정 인물도 아니고

그냥 내가 지닌 능력이나 마음가짐으로 이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사실 그건 내가 착하려고 노력하는 것 보다는 타인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인정해주고,

말 한 마디로 그 사람의 좋은 점들을 알아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해결책을 찾아주는 촉매가 되며 자연스럽게 사는

법과 직관을 발달시켜주고 동시에 사람을 기다려 주는 일. 그건 정말 어렵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취해야 할 때가 있고 버려야 할 때가 있다.

놓아야 할 때가 있고 잡아야 할 때가 있으며

슬퍼야 할 때가 있고 기뻐야 할 때가 있다.

상승할 때가 있고 하강할 때가 있다.

말해야 할 때가 있고 들어야 할 때가 있으며

빠르게 결정해야 할 때가 있고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결국에 영혼은 자신이

있어야 할 때를

알고 우리는 기다리지

않아도 자신의 것들을 자연스레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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