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라 Sep 28. 2016

“치나! 치나!”
중국인으로 불려도 괜찮아

고향은 멀어도 중국집은 가깝다

우리가 마사이족과 삼부루족을 구별하지 못하듯 탄자니아 사람들도 중국인과 한국인을 구별하지 못한다.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어도 “치나!”라고 나를 부르고, 시장에 가면 ‘고수'를 눈앞에서 흔들며 “치나! 치나!” 한다. ‘치나’는 차이나(China)를 스와힐리어처럼 읽은 것인데, 왜 국가명으로 사람을 부르는지 모르겠다. 


‘치나’ 소리를 유독 많이 들은 어느 날, 짜증이 나서 “야! 당신! 콩고리안! 가! 저쪽!”이라고 알고 있는 모든 스와힐리어를 동원해 화를 낸 적도 있다. 우리가 외국에서 중국인으로 오해받으면 '내가 중국인처럼 안 씻고 글로벌 매너가 없어 보이는 건가' 하고 불쾌한 것처럼, 탄자니아 사람들은 콩고 사람이냐고 하면 엄청 싫어한다. 콩고인들은 거짓말만 하고 전부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날은 물이 이틀째 안 나와 떡진 머리로 나가서 한국인이 봐도 중국인으로 알았겠지만, 그렇다고 한들 왜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국적 인증을 받아야 하는지.. 타국에 살면 별일이 다 생긴다.


강제 국적 인증 요구를 받고 다녀도 중국인이 더 싫어진다거나 하지 않은 건, 세상 어딜 가도 있는 ‘차이니즈 레스토랑’때문이다. 아루샤에는 한식당이 한 개도 없다. 그나마 있던 간이 일식집도 문을 닫다시피 했다. 하지만 중국집은 네 곳이나 있다. 고향은 멀어도 고향과 살짝 비슷한 맛을 쉽게 즐길 수 있다.


중식당 '플레임 트리'의 내부, 우리에게 익숙한 원형 테이블도 있다. @2016


‘플레임 트리(Flame tree)’는 그중에서도 음식이 깔끔하고 기름이 적어 자주 찾는 곳이다. 작은 여관과 스파도 같이 있고 길에서 안쪽으로 많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조용하고 안락한 느낌이 든다. 테이블이나 식기도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 스타일이라서 친근하다.


메뉴는 100개가 넘기 때문에 고르는게 좀 힘들다. 탕수육이라고 하면 바로 알지만 ‘스위트앤사워포크’라고 쓰여있으면 낯설어 금방 인식이 안되니 더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걱정 말자. 몇 가지 음식은 사진이 있다! 그리고 10개 정도의 메뉴를 먹어본 결과, 사진과 엄청 다른 요리가 나오지도 않고 음식 맛도 대부분 중상이다.



주로 시키는 것은 우육면(牛肉面)과 만두다. 일명 ‘명동교자 세트’. 우육면은 카레에 들어가는 크기로 자른 소고기가 듬뿍 올라가 나오는데, 짭조름한 국물을 베이스로 파와 청경채가 들어가 있고 면은 칼국수보다 살짝 얇다. 면이 금방 불어 뚝뚝 끊어지기 때문에 면부터 건져먹어야 한다. 짠맛을 싫어하면 96번 우육면 대신 93번 요리를 시키면 된다. 비슷한 하얀 국물의 면요리가 나온다.


만두는 사실 곁들여 나오는 양념간장이 더 맛있다. 만두피 두께가 복불복이라 어떤 날은 만두피가 만두 속의 두배쯤 된다. 이게 만두인지, 고기 송편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지만 만두 소를 만들고 빚고 찌고- 만드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 사 먹는 게 득이다. 만두가 질리면 춘권을 시켜먹기도 하는데, 춘권도 역시 피가 두껍다. 그래서 좀 오래 튀기는건지 기름에 좀 절어있다. '바삭바삭'은 안되지만 '콰직' 소리를 내며 씹을 수 있다. 




햇빛이 쏟아지는 식당과 정원 사이의 테라스. 벽에 그려진 독특한 동물그림이 눈에 띈다. @2016 


'플레임 트리'는 뜬금없이 벽에 알록달록한 동물그림도 있고 정원 곳곳에 정말 힙스럽게 만들어 놓은 동물 모형도 있다. 이렇게 알 수 없는 조경 속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식당과 정원 사이의 테라스 천장. 자주색 부겐빌레아가 풍성하게 올라가 있고 개중 한두 개는 늘어진 모양새가 고등학교에 있던 ‘등나무 벤치’ 같다.


쉬는 시간마다 수다를 떨고 수업시간에 서로 쪽지를 보내도 모자라서 학교가 끝나고 남은 얘기를 마저 하려 앉았던 등나무 벤치. 그러다가 배고프면 분식집에 가서 당시 가장 핫한 메뉴 ‘짜장 떡볶이’를 먹었다. 컵볶이를 먹으면 양이 아쉽고, 분식집에 들어가 1인분을 시키면 이상하게 맛이 밍밍해서 '컵볶이용과 접시용이 다른 철판이다'라는 루머까지 돌았는데, 지금도 그 분식집이 남아있을까. 등나무 벤치는 이미 없어졌다고 들었는데.. 짜장면 없는 중국집에서 음식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커버 이미지 : 플레임 트리 레스토랑 입구의 아치. @2016

작은 사진 1 : 플레임 트리 간판. @2016

작은 사진 2 &3 : 두꺼운 메뉴 책. 맨 마지막 번호가 114번이다. @2016

음식 사진 1 : 진한 국물이 면발과 잘 어우러지는 우육탕. @2016

음식 사진 2 : 송편처럼 두꺼운 만두피와 맛있는 양념간장. @2016

음식 사진 3: 우육탕 너무 짜면 93번 수타면을 시키면 된다. @2016

음식 사진 4 &5 : 끝 맛이 살짝 매운 춘권. @2016

정원 사진 1 : 푸른 하늘과 부겐빌레아가 찰떡같이 잘 어울린다. @2016

정원 사진 2 : 공작새를 밟아버리는 홍학. 어떤 사자성어라도 있는 걸까. @2016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마콩고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