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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 Aug 18. 2016

나른한 오후의 바오밥 주스 한잔

그 맛을 어린 왕자도 알았더라면

어린 왕자의 별에는 무시무시한 씨앗들이 있는데
바로 바오밥 나무 씨앗들이다.
별은 아주 작은데 바오밥 나무가 너무 많으면
별이 산산조각 나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날이 있다. 이상하게 몸에 힘이 없고 모든 일이 귀찮게만 느껴지는 날. 집중은 안되는데 커피는 마시기 싫은 날. 이런 날엔 바오밥 주스를 마시러 가야 한다. 덜컹덜컹 30분을 달려 가야 하지만 그래도 간다. 바오밥 주스를 마실 때면 고집스럽게도 어린 왕자 생각이 난다. 어린 왕자가 장미만 애지중지하는 대신 한 번쯤은 바오밥 나무도 키웠더라면 좋았을 텐데. 혼자 마흔세 번의 석양을 볼 때 바오밥 주스와 함께 했으면 좀 더 행복했을 것 같다.



하늘에서 거꾸로 떨어진 바오밥 나무. 뿌리 같은 가지가 언뜻 보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일반 나무처럼 초록색 잎사귀가 달리고 꽃도 핀다. 동글동글한 다섯 개의 꽃잎을 가진 하얀 꽃, 울퉁불퉁한 몸통의 바오밥 나무와 어울리는 듯 안 어울리는 듯 듬성듬성 핀다. 꽃이 지고 나면  희한한 표주박처럼 생긴 카키색 열매가 열린다. 열매 모양이 쥐가 매달린 것 같다고 바오밥 나무를 죽은 쥐 나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징그럽게 생기진 않았다.



바오밥 열매를 깨면 주황색 잔뿌리 같은 것에 하얀 조각들이 잔뜩 달려있다. 이 하얀 부분이 바오밥 열매의 과육 부분이다. 처음엔 사탕처럼 굴려 먹다가 나중에 작아지면 오독오독 깨물어 먹을 수 있다. 오렌지 같기도 하고 레몬 같기도 한 상큼한 맛이 살살 올라오고 마지막엔 약간 달달 하기도 하다. 딱딱한 레몬맛 마쉬맬로우 같다. 묘한 중독성이 있어서 열매 하나를 다 먹어도 모자랄 거 같은데,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난다고 마사이족 운전수가 말린다. 마사이족들은 소화가 안될 때 민간요법으로 바오밥 열매를 소화제처럼 먹는다. 각종 비타민에 칼슘과 철분도 풍부해 영양이 많이 필요한 임산부들에게도 좋고, 더위에 지친 마사이들이 피로 해소를 위해 쉽게 먹을 수 있던 열매다. 한국에선 생소한 열매지만 이미 작년에 '슈퍼푸드'로 이름을 올렸다.


바오밥 열매는 시장에서 열매를 통째로 사서 과육을 바로 먹어도 되고, 슈퍼에서 파는 바오밥 파우더를 물이나 우유에 타 먹어도 된다. 하지만 오늘같이 모든 게 귀찮은 날은 카페에 가서 마시는 게 최고다. 오늘 고른 것은 바오밥 파우더와 바나나를 같이 갈아서 만든 ‘바나나 바오밥 주스’. 달달하고 시원하고 상큼하고, 늘어지기만 했던 오후가 금방 개운해진다.



커버 이미지 : '블루 헤론' 카페의 바오밥 주스 @2016

큰 사진 1 : 초록 잎이 무성한 바오밥 나무 @2015

큰 사진 2 : 열매가 잔뜩 달린 바오밥 나무 @2015

작은 사진 1 : 바오밥 나무 열매 @2015

작은 사진 2 : 바오밥 열매 과육을 먹는 나 @2015

작은 사진 2 : 바오밥 주스 영수증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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