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하잇 Jun 26. 2017

하나

망상


낯익은 봄이었다. 어쩌면 매 계절마다 돌고 도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유독 낯이 익은 느낌에 몇 번이고 밖으로 나갔다.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마주하듯이 그렇게 매 시간, 매 순간을 놓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일지도 모르지. 유독 보내기 아쉬워지는 건 아마, 그러한 다시 먼 길을 돌아 몇 번의 봄을 마주한 끝에야 그 봄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기에.     


아주 어려운 밤이었다. 밤 한 결에는 모조리 깎아 놓은 듯 한 달과 별과 어둠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가끔 그 날이 무섭기도, 어렵기도 했다. 뭉뚱그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오히려 더 날이 바짝 서 있는 게 아닐까. 밤은 아무것도 경계(境界)하지 않기에 더 경계(儆戒)하곤 한다.

유독 빛나는 별이나 유독 반짝이는 보석, 유독 뜨거운 햇살과 같이 유독 두려운 밤이 있기 마련이다. 그 밤의 한 구석에는 언제나 웅크려 있곤 했다.     


그 밤과, 낮과, 봄과, 여름, 가을, 겨울 같은 것들을 마주하고 있을 때에는 나는 매 순간 흐릿한 착시를 경험하곤 했다. 진실일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착시라고 믿었다. 착시이길 바랬다. 조금은 난잡하게 쓰이는 이 글과 더불어 그들은 내 기억 속의 파편일지도, ... 그 의미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기대라는 것을 마주하곤 했다.

기적이나 기대와 같은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어지는 그 순간, 나는 내 머릿속을 쥐 잡듯이 뒤지기 시작한다.  매순간 겹치는 우연들과 우연이 겹쳐 만들어낸 환상에 나는 영혼이라도 판 듯 그렇게 웬 종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청자는 나였다. 내가 말한 것을 듣는 시간은 언제나 희열에 가득 찼다. 말을 하는 순간마다 나는 그 환상을 마치 겪고 있는 것이라도 한 마냥 행복해지곤 했다. 조금은 부끄러워지기도 한 순간이었으나, 뱉고 나면 후회는 없었다. 다만 가끔 그런 생각은 하곤 한다, 그렇게 나는 나 스스로에게 세뇌시키고 있는 것일지도.    

 

괜찮지만, 괜찮지 않은 순간들을 때때로 자주 찾아오곤 한다. 나는 그 밤도, 날도 어설픈 순간들의 연속이었고 괜찮았으나 괜찮지 않았다. 그 밤이면 나는 하얗게 새어버리곤 했다. 아침의 빛이 들 때 즈음에서야 겨우 눈을 감으며 행복해하던 그 감정을 나는 놓치고 있는 날이 매우 많았다.

때늦은 후회는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이었다. 미련이란 전혀 남기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후회는 할 수 있으나 미련은 남기기 싫어하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음에 한 치 정도의 주저함만 존재한다. 이만하면 꽤 괜찮은 사람 아닌가,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위선인지, 위악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만 남기고 있다.     

감정은 주체 할 줄 알아야하는데, 그게 어려운 순간들이 존재한다. 나는 무엇보다 내가 느려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였다.

사랑하는 것은 너무 부주의해지는 것이다. 한없이 가라앉고, 한없이 치솟을 수 있지만, 그걸 의식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나는 늘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사랑하고 있었다. 그들을 사랑했고, 벅찼고, 설렜고, 감사했다. 내가 사랑을 받았느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을, 글을 써내려가던 연필을, 아주 잠깐 멈칫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깜박이는 커서를 한참 바라본 후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어간다. 그게 내가 받은 사랑과 애정에 대한 보답이니까. 혹자는 그 어설픈 감정을 착각 내지 환상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는 건 결국 모두가 환상이자 착각인거 아닌가. 우리는 모두 망상 속에 살고 있다.








*사진을 비롯한 모든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