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에 대하여
X의 애정이 아직도 드문드문 생각난다. 나는 여전히 누가 누구를 떠나온 것인지 골몰해 있으나 의미는 없다. 그저 내가 놓아버린 것은 무엇이고 X가 무시해버린 것은 무엇일지, 그것만이 각자에게 서서히 찾아올 것이다.
나와 X는 어리석은 아이처럼 자주 미래를 그렸다. 어디로 여행을 갈지, 직장을 구하면 어디서 살지, 같이 살 집의 도면을 그리면서 거실과 작업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소파를 들이고 싶어 했고 X는 소파보다 빈백이 좋다고 했다. 소파와 빈백 중 어떤 것이 좋을지는 결국 얘기하지 못했다. 다만 나는 이제 빈백을 더 좋아하고 더 이상 희망찬 아이처럼 굴지 않는다.
X는 진중한 사람인만큼이나 진부한 약속도 많이 흘렸다. ‘절대 떠나지 않겠다.’ ‘항상 곁에 있겠다.’ 나는 그런 약속을 믿지 않지만 X의 말은 왜인지 조금 믿었다. X는 약속을 지킬 것만 같은 사람이었고, 나는 내 삶에 부재하던 가능성을 손에 꼭 쥐고 싶었다.
하지만 ‘절대’ 와 같은 단어를 쓰는 사람이 늘 그러듯 X는 떠났다. X가 내뱉은 사랑은 그가 피우던 담배 같은 거였다고 생각한다. 아주 빠르게 피어오르고 타버리는, 한 손안에 꼭 잡히는 짧고 작은 담배. 담배 연기는 무의미한 약속처럼 흘러내리고, 날아가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 담배 냄새를 남긴다. 나는 X를 만난 뒤 간헐적 흡연자가 되었고, X가 남긴 약속과 니코틴은 여전히 몸속에 뒤엉켜 있다.
아침에도 햇볕이 들지 않아 어두운 방 안에서 나는 자다 깨다를 반복 하다 마지못해 일어나고, 미루고 미루던 샤워를 겨우 하고. 커튼을 친 채로 창문을 열어 바람은 들어오지만 여전히 어두운 방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다큐멘터리를 본다. 빛은 왠지 너무 부담스럽다고 생각하고, 몸에 새겨진 약속들은 너무 무겁다고 생각한다.
한때 나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었으나 우울과 불안이 기억력을 차츰 거둬가고 있으므로 이 몸뚱이도 언젠가는 가벼워질 거라고 믿기로 한다. 그리고 이제 사람은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