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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Mar 14. 2022

악몽

https://brunch.co.kr/@hereshippo/28


처음으로 남매 폭력에 관한 글을 썼다. 내게 벌어진 일들을 인지하고 정의하고 언어를 찾아 문장으로 만들기까지 8년이 걸렸는데, 그럼에도 이 글을 마치기 위해 또다시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쓰는 내내 끊임없이 자기 검열과 싸웠고 실제로 초고에서 상당 부분이 삭제되었다. 그렇게 더듬더듬 첫 발을 내디뎠다.


남매 폭력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부터 계속 악몽을 꾼다. 나는 매번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거나, 억울함에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며 울부짖는다. 혹은 체념한 채로 도망치거나 나를 쫓아오는 사람들을 피해 숨는다. 늘 엄마, 아빠, 친형제가 등장하고 친한 친구들, 기억 속에만 등장하는 인물들이 함께 나오기도 한다. 배경은 학교였다가, 예전에 살았던 본가였다가 알 수 없는 곳으로 바뀐다.


며칠 전에 꾼 악몽에서 나는 식탁에 앉은 엄마와 아빠에게 가서 내가 차라리 저 새끼(친형제)를 죽여버리고 감옥에 가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속이 터질 것 같이 분하고 억울했다. 꿈속에서도 공황이 오는 듯했다. 아빠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무심히 그러라고 했다. 꿈은 거기서 끊겼고 나는 땀에 푹 젖은 채로 덜덜 떨면서 잠에서 깼다. 한기에 이불을 더 끌어당기면 몸과 잠옷 사이의 축축한 땀이 찝찝하고 불쾌해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수건으로 땀을 닦고 속옷과 잠옷을 갈아입고 눅눅한 침대보를 걷어내고 다시 잠을 잤다.

가장 최근에 꾼 꿈은 더 이상했다. 학교에서 친했던 친구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나를 괴롭혔고 나는 본가에 그들을 데려와 현장 검증을 하듯 가정 폭력 피해를 하나하나 증명해야 했다. 끝으로 갈수록 목소리를 높였다가, 울다가 했고 그들은 멋쩍은 듯이 자리를 떠났다. 다시 학교에 돌아오니 이제는 다른 반 아이들이 내게 성폭행은 당하지 않았냐면서 조롱했고 그들이 덮칠 듯이 나를 둘러싸며 몰려와 교실을 뛰쳐나와야 했다. 그리고 어딘가로 도망쳤다. 그 꿈이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은 나지 않고 깨고 나서 온 몸이 아팠다.


밤이든 낮이든 2시간 간격으로 잠에서 깨고 식은땀 때문에 2-3번씩 잠옷을 갈아입는다. 악몽에서 깨면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서 비상약을 먹기도 한다. 간혹 시간이 맞으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현실감을 되찾는다. 그러나 여전히 꿈과 기억과 현실과 상상이 온통 뒤엉킨 채로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거나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이제 글 하나를 썼을 뿐이다. 내 안에 얼마나 많은 것이 남아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끝까지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쓰고 악착같이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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