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항암 3차 이후에 했던 MRI나, 다학제에서 했던 MRI 결과에서 보았듯이 암은 이미 영상 상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얘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그럼 수술 안 해도 돼?"였다. 안타깝게도 치료방법에 있어 변하는 건 없었다. 정말 혹시 모를 경우를 위해 여전히 수술은 진행되어야 했다.
유방암에서 선항암을 하는 케이스가 아니라면 보통 수술을 먼저 하게 된다. 으레 듣는 흐름은 건강검진에서 뭔가 발견되었고, 조직 검사를 했고, 암으로 보여 수술을 진행했고, 암 타입과 기수가 확정되고, 항암/표적/항호르몬/방사선치료 등 후속 치료를 진행한다는 순서이다. 하지만 최근에 수술 전에 선항암을 진행하는 케이스도 많이 생기고 있고, 이에 대한 장점도 명확히 있어 나는 선항암을 하고 싶었고 다행히 그렇게 진행한 케이스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진단받은 지 반 년이 지나서야 수술을 하게 되었고, 이는 마치 지난 육 개월간 달려온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였다. (수술이 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술 하루 전 입원 수속을 마쳤다. 2인실로 배정받아 들어가 보니 병원에서 가장 뷰가 좋은 병실 중 하나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탁 트인 뷰를 자랑했다. 9층 코너에 위치한 방이다 보니 침대에 누워서는 통창 유리 밖으로 서울 전망을 마주 보고, 아침에는 일출, 밤에는 남산타워 야경도 볼 수 있었다. 이틀 차부터는 심지어 옆 침대가 비게 되어서 1인실 같은 2인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수술 전 날은 생각보다 바쁘게 흘러갔다. 유방외과 유지영 교수님을 만나서 수술에 대한 설명을 쭉 듣고 동의서에 서명도 하고, 성형외과 교수님도 만나서 가슴에 수술 디자인을 위한 그림도 그렸다. 유지영 교수님께서는 실력도 참 좋으시지만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그 이유를 잘 납득할 수 있게 꼭 설명해 주신다. 그러면서도 늘 환자의 말에 따뜻하고 친절하게 귀 기울여주셔서 정말로 항상 감사하다. 수술과는 관련이 없어서 이번 입원에서는 만나지 못했지만 종양내과 박경화 교수님도 늘 바쁘신 와중에도 따뜻하게 마음 써주시는 게 느껴져서 항암 기간 내내 든든했다. 의료진 팀을 참 잘 만났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그렇게 여기저기 불려 다니다 보니 어느새 하루가 다 가버렸고, 입원실 야경을 감상하면서 하루를 마감하며 설렘 반 두려움 반 잠을 청했다. 다음 날은 나의 왼쪽 가슴과 작별하는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말로만 듣던 무시무시한 유륜 주사를 맞고 수술실로 향했다. 침대에 실려가나 했는데 내 발로 걸어들어간 수술장에서부터는 휠체어로 이동하게 되었고, 그렇게 수술실로 안내되어 수술대에 올랐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그 수술의 대상이 나였다. 기분이 이상함과 동시에 너무나 무서웠다. 긴장한 기색이 보였는지 수술 준비를 하러 들어오신 교수님께서 너무 걱정 말라며 손을 꼭 잡아주셨다. 그렇게 마취가 시작되며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모든 건 끝나 있었고, 아침 열 시경에 수술방에 들어갔는데 이미 시간은 오후 네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고 어지러웠지만 옆에선 가족들이 지켜봐 주고 있었고, 그건 큰 힘이 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유방외과 교수님, 성형외과 교수님께서 차례로 나와 수술 경과를 말씀해 주셨는데, 모두 다 잘 끝났다고 하셨다고 했다.
가장 궁금하고 떨렸던 림프 결과는 감시 림프절 1개 절제, 전이 없음. 내가 바랄 수 있는 최상의 결과였다!!
이제 남은 건 회복하는 일뿐. 어지럽고 속이 메스껍고 졸리고 힘들었다. 오후 다섯시가 넘어서야 물을 마시는 게 허락되었는데, 마취가스 때문에 어지럽고 속이 불편해서 마신 물을 죄다 토해내고 말았다. 먹은 게 없어 나오는 건 초록색 담즙과 방금 마신 물뿐이었는데, 모든 걸 다 뱉어내고 나서야 조금은 살 것 같았다. 내가 회복을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건 심호흡뿐. 압박붕대로 가슴을 감아두어서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도 않지만 폐 속으로 있는 힘껏 숨을 들이쉬고, 다시 쪼그라들 때까지 내쉬고를 몇 백 번은 반복했던 것 같다. 그 덕인지 어지러움은 점차 나아져갔고 오후 열시가 넘어서야 밥 먹는 게 허락됐고 그 후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꽤나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가볍고 행복했다.
수술 다음날부터는 매일매일이 회복을 위한 하루였다.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배액관을 두 개 달고 나왔던 터라 거동이 완전히 자유롭지도 않았고 이 피주머니들은 나를 괜히 더 환자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팔을 아직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서 보호자가 계속 필요했고, 언니와 아빠가 많은 고생을 해주었다. 수술 후 4일차 되는 날 퇴원하였는데, 병원에 있는 동안은 가끔씩 하는 병원 복도 산책도 너무나 피곤하게 느껴져서 거의 걷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좋았다. 내 몸에 더 이상 암은 없다.
그로부터 며칠 후, 드디어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완전관해 달성!!!!!! 선항암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게 된 순간부터 바라왔던 그것.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해왔지만 어쩐지 결과가 나오기 전에 MRI 영상만 가지고 완전관해라고 생각해버리면 부정탈까 봐, 정말 만에 하나 혹시라도 아닐 경우에 받게 될 상처가 무서워서. 아직 모른다고, 수술장 가서 까봐야 안다고 말해왔는데. 진짜로 완전관해가 맞다고 한다. 림프 전이도 없고, 완전관해를 달성했다는 것은 그만큼 항암 효과가 좋았다는 것이고 앞으로의 예후가 좋다는 얘기이다.
물론 완전관해가 재발이 아예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완전관해가 아니라고 해서 꼭 재발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확률 싸움에서 단 몇 퍼센트만이라도 얻어낼 수 있었다는 게 다행스럽다. 내가 그저 바라는 건, 빠른 시일 내에 전 세계 연구진이 암을 정복 해내는 것, 그래서 누구도 이런 병으로 고통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재발 같은 거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날이 오기 전까진, 남들보다 빨리 암이라는 걸 경험했지만 그런 만큼 더 일찍부터 건강에 신경 쓰면서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그리고 의미있게 사는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아, 일단 표적치료와 항호르몬제 치료부터 마쳐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