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란 가장 어려운 것
다학제
1월 7일, 다학제가 있었다. 이변은 없었다. 추가로 발견되었던 종양들이 선항암에서 사라지면서 그것들이 암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게 되었고, 곳곳에 퍼져있는 여러 개의 종양들을 제거하면 가슴 조직을 남기는 것에 의미가 없다고 판단되었다. 그렇게 전절제로 결정 났고, 원발암이 유두에 가까웠던 관계로 교수님께서는 만약을 위해 유륜 유두도 같이 제거하자고 하셨다. 경험 상 원발암이 유두에 가까운 경우에 이를 남겨두었을 때 재발하는 경우를 종종 보셨다고 한다. 그렇다면 당연한 결정이었고, 이견은 없었다.
MRI 결과는 예상대로 깨끗했다 (중간검진 때 보았던 것처럼). 하지만 완전히 사라졌다, 라고는 절대 말해주지 않았다. 수술방에서 열어봐야 알기 때문인 거겠지. 다학제가 끝나고 따로 만난 유방외과 교수님은 여전히 친절하고 잘해주셨다.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해주실 때마다 많이 신경 써주신다는 느낌을 늘 받는다. 이어서 성형외과 교수님도 만났는데 동시 복원은 유두를 절제해서 피부가 적어지기 때문에 어렵고, 확장기를 삽입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후 2-3개월간 피부를 점차 늘려나갈 거고 최소 두 달 휴식 후 7-8월 이후에나 재건수술이 가능할 거라고 하셨다.
그렇게 많은 결정들이 내려진 다학제로부터 한 달이 지난 2월 7일로 수술 날짜를 잡을 수 있었다.
제주도 보름 살기
수술까지 비는 시간 동안에 온 가족이 다 같이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무려 보름 동안. 대가족에 9개월이 채 안 된 조카를 데려가다 보니 짐이 한가득이었다. 다행히 별 무리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나의 컨디션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막항이 지난 지 한 달이 넘어가자 몸이 점차 회복하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한 달 전의 나는 계단 다섯 개도 오르고 나면 다리가 무겁고 힘들었는데. 제주도에서의 나는 몇백 개나 되는 계단 끝의 오름을 오르고, 복층 건물을 수없이 오르내리고, 하루 종일 밖에서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좋아졌다. 무엇보다 마음건강이 많이 회복됨을 느꼈다.
일상이 사라져서 힘들었던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과 침대에서 보내는 환자의 일상을 살다가, 가족 다 같이 일상을 벗어나서 하루하루 새롭게 지내다 보니 걱정은 잊히고 마음은 치유되었다. 여행 초반까지만 해도 머리끝까지 예민해져있고 짜증이 가득했던 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나를 언제나 위해주고 배려해 주고 아껴주는 가족에게 더 이상 상처를 줄 수 없었고, 다 같이 좋은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점차 몸도 마음도 회복되어갔다.
수술을 앞두고
길고도 짧았던 제주도를 뒤로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온 다음 날 아침, 갑자기 컨디션이 급격하게 저하되었다. 너무 추워서 전기매트를 켜고 오들오들 떨면서 이불 속에 있는데 오한이 오는 것 같았다. 병원에 안과 외래가 있어서 오후엔 병원으로 향했고, 간 김에 유방외과에도 들러서 열을 재 달라고 했다. 38.3도였다. 간호사분이 놀라며 열이 나면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일단 집에 가서 타이레놀을 먹어보고, 아침에 경과를 알려달라고 하셨다. 당장 3일 후 입원인데. 이미 막항 후 6주나 지난 시점의 수술이었기 때문에 더는 조금도 늦추고 싶지 않은데. 감기면 어떡하지? 코로나인가? 요즘 유행하는 독감이면 어쩌지?
온갖 걱정을 하며 집에 오자마자 타이레놀을 먹었고, 정말 너무 다행히도 열은 금방 내렸다. 아마도 여독이 풀리지 않아 좀 피곤하고 그간 무리했던 모양이다. 수술은 예정대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어느덧 입원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