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결과는 완전관해로 잘 마무리가 되었고, 다음 혈액종양학과 외래까지 나에게는 한 달가량의 시간이 주어졌다. 보통 4-6주 사이에 표적치료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병원과 거리가 먼,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성형외과 외래에 가서 상처를 소독하고 경과를 관찰하였다. 수술 당시 하고 나왔던 붕대를 풀고 드레싱을 새로 하면서 써지브라를 착용했는데, 이게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었다. 전절제를 한 피부 밑으로는 잘라내어 버린 조직 대신 인조진피로 둘러싸인 확장기가 자리하고 있었고, 인조진피는 부드러울 것이라는 나의 막연한 예상과는 다르게 아주 딱딱해서 동그란 가장자리를 따라 나를 짓눌렀다. 특히 갈비뼈 부위가 너무나 아파왔다. 더군다나 수술 직후의 가슴은 아주 땡땡하게 부어있었고, 그 위를 써지브라로 아주 단단하게 조인 상태로 24시간을 보내야 했다. 움직일 때마다 - 특히 눕고 일어날 때나 허리 숙일 때 - 가슴속에서 확장기가 꿀렁거리며 저절로 억 소리 나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퇴원하고도 처음 2주는 배액관도 달고 있는 터라 움직임도 제한적이라서 (어떻게 보면 다행히도)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만 보냈고, 성형외과 외래를 가는 날이 아니면 집 앞 산책 정도만 한두 번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몸은 너무나 가벼웠다. 수술이라는 큰 관문을 넘기기도 하였고, 더 이상 암이 없다는 그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2월 24일, 배액관을 제거했다. 큼지막하고 무거운 장치와 피와 진물이 흐르는 거추장스러운 관을 더 이상 자리를 이동할 때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이젠 더 이상 진통제를 먹지 않아도 거의 아프지도 않았다. 병원에서는 항생제를 처방해 주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병원을 다녀오기 직전까지 너무나 좋았던 컨디션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소화가 되지 않았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상태가 며칠 지속되자 혹시 항생제 때문인가 하는 생각에 일단 항생제 투약을 중단했다. 주말이 지나고 찾아간 병원에서는 다른 타입의 항생제를 처방해 주었고, 그걸 먹기 시작하자마자 이번엔 쉬지 않고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소화는 아주 조금 나아졌는데, 무언가를 먹으면 5초 내로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이런 증상들... 항암 때 하고 이제 끝난 게 아니었나? 지긋지긋하다. 이제 더 없을 줄 알았던 부작용들이 나를 괴롭히자 숨이 막혀왔다. 결국 병원과 전화상담 끝에 새로운 항생제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진통제도 괜히 먹기 싫어졌다. 아마도 나의 장내 미생물 환경이 항암치료로 다 뒤집혔겠지. 그간 온갖 약들로 유익균도 다 죽었겠지. 안 그래도 엉망이 된 몸에 항생제를 때려 넣으니 버티지 못한 걸까. 하루하루 죽만 먹고 지내기도 하고 매운 건 또 일체 못 먹고 부드러운 음식들만 꾸역꾸역 먹었다. 관리를 시작해 보자 하는 마음에 약 대신 유산균과 프리바이오틱스를 먹기 시작했다.
배액관을 뽑고 항생제와 싸우는 동안 며칠 시간이 흘렀는데, 수술한 가슴 부위에 이상한 변화가 보였다. 확장기에 아직 물을 채우기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장기가 쭈글쭈글한 상태였다. 부기가 점차 빠지면서 그 찌그러진 표면이 드러났는데, 그 부위에 물이 차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엄청난 고통이 찾아왔다. 어느 날 오후부터 시작된 뻐근한 고통이 시작되었는데, 이른 저녁이 되자 아주 약간의 움직임에도 어마어마한 통증이 있었다. 진통제 없이도 며칠을 괜찮다가 갑자기 왜?..
항생제에, 확장기 고통에. 배액관 빼고 이제야 일상으로 돌아가는 첫걸음인 줄 알았는데, 그 발걸음이 너무나 어려웠다.
다시 찾아간 성형외과 외래에서는 물이 차면서 그 부분이 신경을 눌러서 아픈 거라고 하면서 주사기로 물을 빼주셨는데 이 과정 또한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이런 힘든 시간들도 점차 지나갔다. 아플 땐 타이레놀을 먹고 버티고, 매일 드레싱을 직접 갈아주고, 걷기라도 하면서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아픈 것들은 사라지고 체력도 점차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솔직히 한 달 반이 지난 지금은, 힘들었던 부분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글을 쓰기 위해 애써 기억과 일기장을 더듬어야 했다.
항암을 마치면서 끝난 줄 알았던 부작용 증상들이 또다시 나를 괴롭힐 때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기분이었고, 좌절감에 휩싸였다. 그래도, 그것마저 지나간다. 나에게 다시 주어진 삶을, 힘듦과 슬픔이라는 감정 속에 얽매여서 살고 싶지 않았다. 암 환자는 희망과 좌절 사이에서 여러 번 곤두박질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 스스로가 구해줄 수밖에 없다.
겨울엔 추운 한파가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지만, 지나가면 또다시 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