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종구 Dec 10. 2024

내가 만일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랐다면

전혀 다른 환경에서의 삶을 상상하기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하는 게 어색하다. 지금 내가 일구고 있는 일상과 맞닿아있지 않는 질문들을 억지로 하려니 도대체 이런 상상이 지금 여기와 어떤 관계가 있지? 라는 생각부터 튀어나오면서 생각의 끈이 더 이어지지 않는다. 지난날을 돌아보니, 그동안 읽었던 책들 가운데 문학은 손에 꼽을 지경이었다. 최근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책도 채식주의자 한 권 만을 간신히 뗄 분었다. 나의 정신세계는 주로 철학과 역사, 사회과학으로 채워져 있었다. 내가 책을 붙잡고 있을 땐, 상상의 빈곤함을 채우려는 목적보다 지식을 쌓기 위함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부풀어오르는 상상의 날개에 나를 맡길 때보다, 또 하나의 벽돌을 찾아내어 지식의 책장에 분리해서 정돈하는 과정이 더욱 뿌듯했다. 당분간은 억지로 떠오르지 않는 글감을 찾아내기보다, 쓰고 싶은 이야기를 잘 적어보려 한다.


 저 너머 조선시대에서의 삶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나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웃들과 엉켜 살아가며 경험했던 실존적 충격은 여전히 생생한 풍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 중에서 인상깊은 풍경 중 하나는 캄보디아에 있었다. 스물 여섯, 캄보디아의 한 급식소에서 매일같이 찾아오는 수백명의 아이들이 먹을 볶음밥을 짓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하나같이 그냥 오지 않았다. 딱봐도 유치원의 고학번쯤 되어보이는 그들의 옆구리엔 아직 걷지도 못하는 어린 아가가 엉덩이를 걸치고 있었고, 반대쪽 손은 이제 갓 걷기 시작한 아이의 고사리같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렇게 저보다 더 어린 동생들을 얼레며 간신히 자리에 앉혀놓고 식판에 밥을 떠와서는 정신없이 숟가락질을 하는 동생들을 뒤로 하고 제 식판에 있는 음식들을 모조리 검정비닐봉지에 쓸어담았다. 그리고 내게 민망한듯 다가와서는 배고파요, 라고 말했다. 한국의 무료급식소에 찾아온 노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보아와서 익숙하다 생각했는데, 이 낯선 타국에서 어린아이의 모습을 통해 다시 보는게 여전히 충격적이었다. 세상물정과 관계없이 마음껏 친구들과 뛰놀며 재미를 만끽할 나이에, 저보다 어린 동생들을 챙기고, 집에 있을 부모에게 줄 밥까지 챙겨다 줘야하는 그의 여린 어깨가 너무나 버거워보였다. 


  또 하나의 생생한 풍경은 서른 셋의 네팔에 있었다. 큰 지진이 난 직후에 간 터라,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무너진 건물들은 길가에 뻗은 들풀들 만큼이나 많았고, 공항 인근의 도로도 쩍쩍 갈라져 있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틈을 유유히 헤엄치는 차 안에서 구토하듯 반나절을 더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마주한 풍경이 펼쳐졌다. 전기도, 수도도 미치지 않는 시골에서 그들은 나무기둥에 양철을 얹어 구색만 갖춰놓고 살았다.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한 집에 들어가니, 흙바닦을 걸레로 닦고 있는 한 여인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흙바닥에서 잔다고? 지붕만 있을 뿐 집 밖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데? 그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지금 내가 일궈야 할 일상이 아무리 팍팍하다 하더라도, 발달한 사회망 안에서 누리는 편리함을 부정할 수 없다. 바람이 쌩쌩부는 날에도 얊은 티 한장 걸치고 돌아다닐 수 있는 나의 집, 늘 여분의 먹거리가 들어있는 냉장고, 마음만 먹으면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며 느긋하게 앉아있을 수 있는 카페가 인근에 있고, 가방 속에 있는 노트북만 펼치면 머릿 속의 생각들을 글로 정리해서 나누기도 하고, 공부까지 할 수 있는 편리함까지. 내 일상을 에워싸는 이런 편리함들이 숨쉬는 공기처럼 가까이 있어서 그 고마움을 잊고 살 때가 많다는 게 민망할 정도다.


  요즘도 가끔 그 모습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들의 삶과 나의 삶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모른다. 내가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만으로 그들이 꿈꾸지 못할 일상의 편리함을 누려야 할 이유 또한 모른다. 내가 만일 지금 누리고 있는 일상의 문명과 단절된 자리에서 나고 자랐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쉽게 상상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장작불을 떼어 먹거리를 준비하고, 설령 의복이라 보기 어려운 옷감만을 간신히 걸치고 살지라도, 스스로를 불행하다 여기며 살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어제보다 더 맛있어보이는 열매를 발견한 날엔 가슴벅찬 미소마저 지으며 기쁨의 춤을 출 것 같다는 다소 엉뚱한 상상마저 해보게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