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과연 인종차별이 가장 적은 나라인가?
흑인의 생명도 수중하다는 뜻의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2013년 흑인 소년을 총으로 살해한 조지 짐머맨의 무죄 평결에서 촉발되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워싱턴 DC 링컨 대통령 기념관 앞에서 ‘I Have a Dream’ 연설을 한지 50년이 넘었고, 바로 그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 선언을 한지 150년이 흘렀다. 2016년 현재 흑인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집무를 보고 있지만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 문제가 해결되기까지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을 이 짐머맨 사건과 이로 인해 시작된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미국 사회는 무엇이 짐머맨으로 하여금 주머니에 스키틀즈와 음료수병을 넣고 귀가하던 16세 소년 트레이번 마틴을 소위 위험 인물로 판단하게 했는지 스스로 묻고 있지만 아직 속시원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자율방범대원이던 짐머맨은 경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틴을 계속 의심하게 되고 그의 뒤를 따르다 결국 총으로 죽이게 된다.
짐머맨 사건 이후 2014년에는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18세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비무장 상태에서 경찰의 총격에 목숨을 잃게 되면서 온라인상에 주로 활동했던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본격적으로 실체를 가진 민권단체가 되어 전국적으로 수천 건의 시위를 조직하게 된다. 2015년에는 볼티모어 경찰이 흑인 프레디 그레이를 불법 칼 소지 혐의로 압송하는 과정에서 그레이가 죽게 되고 이는 전국에서 크고 작은 시위와 함께 4월에는 볼티모어 폭동 사태가 터지기에 이른다.
미국내 보수언론을 비롯한 일부는 이러한 일련의 살인 사건들이 인종 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대부분 이러한 비극들의 시작은 짐머맨과 경찰들의 눈에 들어온 상대가 흑인이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그들이 갖고 있던 흑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결국 꿈 많던 젊은 생명들을 앗아간 것이라고 말이다. 사실 이러한 선입견은 미국 경찰 통계에 여실히 드러난다. 흑인은 교통법규 위반시 차량 검색을 당할 확률이 백인에 비해 3배 정도 높으며 체포될 확률은 2배에 가깝다. 이 같은 이유로 미국의 흑인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경찰로 부터 항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어려서부터 교육을 한다고 한다. 그러니 무슨 일이 생기면 최대한 빨리 경찰에 신고부터 하라고 부모로부터 교육 받는 백인들은 보이지 않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얼마전 역설적이게도 미국이 세상에서 가장 인종차별이 적은 나라라고 주장하는 글을 읽었다. 조금은 자극적인 제목과는 다르게 꽤나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인종주의는 본능적으로 생겨난 생존체계이고 진공상태에서는 그 어떤 도덕적 함의도 없다고 본다면 여러 인종이 공존하는 사회에서만이 도덕적 시험대에 오른다는 것이다. 즉 여러 인종이 섞여 살지 않는 사회는 인종차별이 없는 곳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미국은 다양한 인종이 공존한 경험이 많고 또 그 기간동안 여러번 시험대에 올라 적어도 인종주의를 인종주의라고 인지할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이다. 150년 넘는 기간 동안 이 시험대를 거친 결과 미국에서는 기업/정부 채용이나 대학교 입학에 있어 일종의 소수자 쿼타(quota)제인 ‘어퍼머티브 액션 (affirmative action)’이나 소수자에 대한 혐오범죄(hate crime)를 연방법으로 강력 처벌 하는 등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다.
이러한 장치들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 것은 부인할 없는 사실이다. 당장 공개적(overt) 인종주의(racism)는 현재 미국 사회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불과 한 세대 전만해도 백인들은 흑인들과 함께 학교를 다닐 수 없다며 흑인 어린이들의 등교길을 공개적으로 저지한 정치인이 있었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백인들은 미국에 인종주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경우가 많아졌다. 오히려 일부 백인들은 어퍼머티브 액션과 같은 제도들에 의해 자신들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다수 백인들의 그릇된 믿음 내지는 무관심으로 인해 오늘날 미국 사회의 인종주의는 많은 경우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 이는 가해자의 고의성 여부를 떠나 피해자가 느끼게 되는 아주 미묘한 차별 또는 공격을 의미한다. 흑인에게 “너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것 치고는 정말 예쁘다” “너는 치킨 안좋아해?” “너도 대학교 나왔어?” 등을 말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마이크로어그레션은 수면 아래서 가해자가 인지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공개적 인종주의에 비해 특정 인종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보다 쉽게 생산해 내는 기제이다. 어떻게 보면 트레이번 마틴, 마이클 브라운, 프레디 그레이 모두 이러한 기제를 통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된 이미지의 희생자들이다. ‘인종차별이 가장 적은 나라’의 고민이 더욱 깊어진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