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발표는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고, 자신감이 넘쳤어."
인터뷰 및 테스트를 말아먹었던 한 주. 하지만 어제는 오랜만에 가슴이 설레이는 경험을 했다. 디베이트 클럽에서, 내가 제안한 발표가 BEST로 뽑힌 것이다. 영국인, 미국인들이 대부분이었던 클럽에서 말이지. 디베이트 코치는 내가 제시한 아이디어가 가장 참신했고, 짧은 시간 안에 즉석으로 발표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참고로 디베이트 주제는 "외계로부터 소통하자는 신호가 온다면, 이에 응답해야 하는가? 였다)
사실 나는 한국어든 영어든 말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장황하게 온갖 말을 쏟아내는 스타일이며, 말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은근히 관종 기질이 있는 건지, 항상 청중 앞에서 말하는 것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청중 앞에서는 원래의 나와 다른 나를 만나게 된다. 조용하고, 차분하고, 이성적인 내가 공격적이고, 목소리 크고, 감정적인 인간으로 변하는 것이다.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평소의 나와 반대인 인간이 튀어나오는데 억눌린 나를 마주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 같다.
한때 나는 말을 심하게 더듬었었다. 나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괴감을 극복하기 위해, 대학에서는 최대한 speaking intensive한 수업을 들었지만, 미국 학생들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다. 법 수업을 들었다가 속사포처럼 쏟아져나오는 토론에 압도되어 한번 듣고 바로 수강취소한 기억도 있다. 그렇지만 스피치, 연기 수업들도 꾸준히 수강하면서 긴장을 푸는 법, 호흡법, 무대 경험도 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막상 무대에 서자 패닉와서 눈물만 흐르고 대사 하나 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대사관 직원들과 Toastmaster Club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각종 토론 이벤트를 찾아다니면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토론하려 했다. 그래도 긴장하면 말을 더듬고, 목소리가 떨리고, 말이 장황해진다. 1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르니 조금 자신감이 생기기는 했다만, 아직 갈길이 멀기는 하다. 그래도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는 좀 더 익숙해졌다는 점에서 나를 칭찬해야지.
그런데 막상 정치 토론은 잘 보지도 않는 내가 왜 이런 이벤트를 부지런히 찾았을까? 나는 정말 토론을 좋아하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말하기' 그 자체인가, 아님 '관점의 제시'인가? 아님 억눌린 나를 찾음으로써 느끼는 '카타르시스'일까? 어쨌든 런던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