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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한 Sep 14. 2021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인가.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곤 뒤통수부터 꼬리뼈까지 흐르는 전율을 느꼈다. 이 책은 보기 전에 분명 내용이 완전 구려도 제목이 8할 이상은 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책을 집어 들고 집어와 천천히 종이를 넘겼다.

 마흔에 접어든 저자 하완은 회사 생활에 염증을 느껴 홧김에 사표를 던졌다. 주변 사람들이 만류를 할 줄 알았는데 기다렸다는 듯 매우 신속하게 사표가 수리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자발적 퇴사를 당했다는 그. 그때부터 온전히 ‘나’에 대해서 다시 돌아봤다는 이야기를 빼곡히 기록해두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뭇 나와 다른 그의 인생을 조금 부러워했다. 나는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았다. 좋지 않은 스펙과 학벌로 시작한 사회 초년생은 줄 곳 을(乙) 취급을 받으며 살았다. 정규직보다 계약직이 더 어울렸고, 승진보단 반려와 좌천이 더 익숙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이 모든 것이 허무했다. 5년에 걸친 계약직을 마무리하고 막상 정규직이 되어보니 급여는 많아졌는데 책임져야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더해 진 월급은 나의 스트레스 값이었다. 

 매 순간이 바쁘고 치열했다. 직장 생활이 길어질수록 업무는 늘었지만 통장잔고는 변하지 않았다. 많이 들어온 날은 소주를 두병 마셨고 적게 들어온 날은 한 병만 마셨다.


그의 말처럼 ‘노력’이라는 것은 자주 나를 배신했다. 일분일초를 열심히 사는데 기껏 잘 살아놨더니 누군가는 노력도 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마음은 다급해졌고 더 열심히 살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마음속 불안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침대에 누워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었다. 수 만 팔로워를 보유한 그는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강남대로를 달리는 사진이 있었다. 사진 밑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하...되는 일이 없다. 답답한 마음에 드라이브 나왔다.’


핸들에 올려놓은 그의 손목엔 고급 시계가 눈이 멀 정도로 번쩍였다. 하... 그 글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한 숨이 나왔다. ‘난 왜 그와 같은 차를 타고 강남대로에 있지 않은가.’ 라며 내 인생이 비참해졌다. 또 다른 사람의 피드에 들어갔다. 왜 모든 여성들은 쫄쫄이 옷에 필라테스만 할까? 그리고 이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어디 꽁꽁 숨어있는 모양이다. 


아마 이생에 그와 같은 차를 탈 수는 없을 것이다.(당시 보았던 차는 구매가가 5억이 넘는 차였다. 5억! 말이 되는가! 차 한 대 값이 우리 집 보다 비싸다는 게!) 그렇다고 나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의 줄임말)인가? 


수많은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어쩌면 대단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3요소가 있다고 한다. 그것들은 욕구, 감정, 인지인데 그 중 이 욕구라는 것은 다시 생리적 욕구와 심리적 욕구로 나뉜다. 생리적 욕구는 말 그대로 먹고, 싸는 인간의 생존과 본능에 맞닿아 있는 것이고 심리적 욕구는 다시 타고난 것과 학습된 심리적 욕구. 즉, 사회적 욕구라 불리는 것으로 나눠진다. 

 이 사회적 욕구는 성취의 욕구와 인정의 욕구로 나뉘는데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국회의원, 판사, 검사, 의사는 유독 한국에서 존경을 받는 직업군으로 분류가 된다. 특히 국회의원의 경우 그들의 가오는 가히 하늘을 두어 번 찌를 정도로 높은데 외국에 어디 나라의 국회의원은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겨 상대적으로 낮은 월급을 받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국회로 들어가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그 분들이야 그러기나 하는가? 내로라하는 고급 승용차에, 외유성 출장, 틈만 나면 성희롱성 발언, 죄를 지어도 처벌 받지 않는 철밥통이지 않은가. 어쨌든 이야기가 좀 엇나갔는데. 이런 것들을 사회적 욕구의 일면이라고 본다. 

 이중 앞서 언급한 인정의 욕구라는 것이 있는데 이게 참 골 때리는 욕구다. 인간이라면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있다. 이것을 아주 잘 이용한 시스템이 바로 ‘좋아요’다. 남들에게 받는 ‘좋아요’의 개수가 그들로 하여금 인정을 받는 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큰 문제가 되는 순간은 바로 이것이 주객전도가 벌어질 때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러 카페를 가는 것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기 위해 카페를 갔다가 덤으로 커피를 마시는 형상이 된다. 

 남들 보다 ‘좋아요’를 더 받기 위해 더 과감하고, 위험한 것들을 마다하지 않는다. 결국 그 안에서 ‘나’라는 존재는 서서히 지워져 간다. 이런 것들이 결국 자존감 하락이나 우울 등의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기본만 생각해보자.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이왕 태어난 거 남들 눈에 들려고 사는 것 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남들이 나를 좀 바라봐 주는 게 더 간지 나는 삶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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