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 말고 소듕
바다가 자신의 장난감 상자에서 나비를 꺼내 놀고 있었다. 색종이로 만들어 고무줄을 끼운 나비는 손으로 잡고 돌리면 팔랑팔랑 날았다. 그 단순한 움직임에 몰두하는 바다가 어찌나 예쁜지, 한참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러던 찰나, 알송이가 다가와 말했다.
"그거 내가 어린이집에서 만든 거야. 돌려줘!"
옆에서 지켜보던 달송이는 머리를 갸웃하더니,
"그래도 바다 오빠 장난감 상자에서 나왔잖아. 오빠 거야!" 하고 바다의 편을 들었다. 또랑또랑 내뱉는 말들은 귀여웠지만, 논리라고는 없는 대화를 듣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알송이는 입술을 삐죽거리다가 몸을 돌려 내게로 왔다. 서글픈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거... 내 소듕한 나비야..."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모습에 가슴이 찌릿했다. '소중'이 아니라 '소듕'이라며 눈물을 삼키니 가엾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나는 바다를 불렀다. 이미 상황을 파악한 듯 바다는 처음부터 모든 걸 설명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달송이가 끼어들어 만 세 살 다운 의견을 보탰다. 그러자 알송이는 더 크게 흐느꼈다. 분리수거장에서 주워왔다고 해도 믿을 만큼 물풀로 범벅이 된 나비가 뭐가 그리 대단한지. 한숨이 나오면서도 아이들의 진심이 느껴져 마음이 뭉클했다.
이런 사소한 것들을 아이들은 뜨겁게 사랑한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적어볼까. 지난 생일에 선물로 받은, 방정맞게 캐럴이 나오는 LED 팽이. 시옷과 이응을 그려온 이면지. 어린이집 선생님이 상으로 주신 말랑말랑한 쫀드기(농담이 아니다. 집에 서른 개는 굴러다닌다). 부러진 포켓몬스터 장난감 뚜껑. 고장 나 불이 들어오지 않는 벌레퇴치팔찌. 오감 수업 때 받아온 나무망치. 맥포머스 자석블록의 특정 조각. 어린이집 씨름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고 받아온 천하장사 카드.(어찌나 의기양양했는지 백두장사라도 된듯했다.)
이 모든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보물이자 기쁨이다.
아이들을 배웅하러 나온 선생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어머님, 아이들이랑 종이컵으로 문어를 만들었는데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꼭 집에 가져가고 싶다고 해서 가방에 넣어줬어요. 그런데 양이 좀 많아요."
"괜찮아요!" 그렇게 대답했지만, 집에 돌아와 가방을 열자마자 속으로 외쳤다. '풍어에 감사하는 제사라도 올려야 하나?' 종이컵 문어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쌍둥이라 뭐든 두 배인 건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좋아했으면 선생님도 주저 없이 넣어주셨을까. 슬며시 웃음이 났다.
그런데 치우는 건 내 몫이라서 "다음에는 조금만 가져오면 안 될까?"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는데, 쌍둥이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 작은 몸짓을 보고 깨달았다. 내가 상처를 줬구나, 고작 문어 몇 마리 때문에.
바다는 작년까지만 해도 낙엽과 나뭇가지, 도토리를 한가득 주워왔다. 빨래하기 전에 꼭 주머니를 뒤집어서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한 살 더 먹으니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아이들은 대체로 무용한 것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사랑은 뜨겁지만 짧다. 길어야 사나흘. 이후엔 장난감 상자 구석에 자리 잡고 아이들의 손길을 기다리다가, 분리수거날에 슬쩍 버려지곤 한다. 신기하게도 다시 찾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금세 또 예쁜 쓰레기들을 발견해 온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카레닌 같은 아이들.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뭘 하냐는 아이들의 질문으로 하루는 시작된다. "체육 수업이 있어." "위키즈 활동이 있네." "체험학습을 간대."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 마리의 강아지가 소리 높여 외친다.
오늘은 좋은 날이야!
하원 후에는 늘 묻는다.
"오늘도 사랑 많이 받았어?"
아이들은 매번 환히 웃으며 대답한다.
"응!"
그 웃음에 마음이 녹는다. 아이들은 단조로운 일상에서도 기어이 행복을 찾아내는 신비한 능력을 품고 있다. 매일을 환희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경이롭다. 사랑이 넘치는 아이들이라서 다행이다. 무용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수함을 조금 더 귀하게 여겨야겠다.
나는 오늘도 반성한다. 치울 생각에 눈썹부터 찌푸리며 아이들의 물건을 가벼이 여기고, 그 너머에 있는 마음을 보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그것은 하루치 행복의 조각들이었다. 온 마음을 다해 놀고 뛰며 느꼈던 기쁨이 담긴 추억이었다.
어린 시절 나도 그랬다. 저학년 때는 향기 나는 비누를 모았다. 서랍을 열면 코끝을 간지럽히는 비누향에 마음이 살랑거렸다. 교복을 입고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좋아하는 노래를 직접 녹음했다. 지금은 책을 수집한다. 손에 잡히지 않는 향기를 모으다가 가수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종내엔 작가들의 글을 모으고 있다. 아이들과 별다를 게 없구나.
작은 것에 마음을 주고, 그걸로 온 세상을 가진 듯 울고 웃던 나. 이제는 엄마로서 너희의 순수함을 오래도록 지켜줄게. 내일은 더 좋은 엄마가 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