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번째 날, 보편적인 슬픔
시월이십오일, 이천십구년. 부제: 마음을 비운다는 것
멀리서부터 바람이 온다. 작은 바람이 모여 큰바람이 되어 불어온다. 바람은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공기를 모두 모아 하얀 꽃을 피운다. 저 멀리서 안개꽃 같은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이 분다. 그리고 비가 내린다.
봄비다.
지난여름 네 번째 시험관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와서 또 한 번의 지독한 독일의 겨울이 지났다. 꾸준히 산책과 운동을 나가고, 세로토닌 분비에 도움이 된다는 영양제도 추가로 챙겨 먹었다. 그리고 비교적 아주 잘 겨울을 보냈다. 불안정한 파도 같은 마음도 제법 안정을 찾았다. 조금씩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이는 시간은 지속됐다.
친정에서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늦은 봄, 이른 여름 막내 동생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남편은 두고 혼자만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결국 남편의 비행기 티켓까지 끊고야 말았다. 막상 티켓을 끊고 보니 우리가 다시 언제 또 한국을 갈 수 있을까 싶었다. 네 번째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그렇게 다섯 번째 시도를 고민하고 있었다.
동생의 결혼식은 잘 끝났다.
그리고 그 사이 우리의 다섯 번째 시험관도 끝났다.
다섯 번째는 계획에 없던 터라 조금 걱정했었는데, 마음을 비우고 지냈다 진행해서였는지 진행과정은 네 번째보다 훨씬 좋았다. 채취된 난자의 개수도 네 번째보다 많았고 이식했던 난포도 더 많았다. 수정란의 상태도 더 괜찮았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이식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두 번의 기적이 일어났다. 이미 두 번의 기적이 일어난 우리에게 세 번째 기적은 욕심이었나 보다. 다섯 번째 시술도 착상조차 하지 못한 비임신이었다.
다섯 번째에서는 내가 자가면역질환이 있다는 것도 알게 돼서 대비했는데 결과는 다를 게 없었다. 해볼 수 있는 건 모두 다 해본 것 같다. 먹을 수 있는 것과 운동도 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다 했다. 배아라도 두 번 품어 본 것이 많이 기뻤고 감사했다. 이제는 나이가 너무 많아졌다. 여러 번의 시험관으로 호르몬의 불균형도 생겼고 남편은 이제 내 몸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여기서 우리의 긴 시간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더 이상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버티기 힘든 게 이유였다.
마지막 시술이 끝나고 다시 계절은 두 번이 더 바뀌고 공기는 이미 겨울이었다.
절기상으로 아직 가을이지만 독일은 이미 긴긴 겨울이 시작되었다.
마지막 시술이 끝나고 한국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곧 독일로 돌아왔다. 독일로 돌아와서 나는 바로 파트타임 일을 시작했다. 속이 시끄럽고 머리가 복잡해서 최대한 단순한 일을 하고 싶었고 최대한 몸으로 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그런 쪽으로 일을 찾아 바로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체력을 쓰는 일이 내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잡생각이 눈에 띄게 줄었고 사람들을 계속 만나니 우울했던 감정도 많이 벗어났다. 언제까지고 이 일을 계속할 수는 없겠지만, 당분간은 지금처럼 지내게 될 것 같다.
그동안 꼬박 3년의 시간이 지났다. 30대에서 40대가 되었고 지독한 우울증과 불면증도 왔다 갔다. 인생의 과정에서 인생의 전부를 착각하기도 했다. 이 시간 때문인지, 나이가 들어서 인지 성격도 조금 또 변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집착이 많이 사라졌고 귀찮은 것들이 많아졌다. 가령,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도 이젠 힘이 부쳐 하지 않게 되었고, 조금 해보다 안될 거 같은 것에 진을 빼지 않는다. 아직도 멀긴 했지만 단념하고 내려놓는 것을 조금 배운 것 같다.
난임을 겪고 있는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거나,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겪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어떤 의미 인지 헤아리는 데 일말의 도움이 되고 싶어 내 아픔을 여기에 토하듯 끄적이기 시작했다. 많이 우울해서 몇 줄 읽어보고 덮은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구구절절 더 슬프게 쓰려고 따로 애쓰진 않았다. 최대한 담담하게 그러나 가능한 느낀 감정을 그대로 담고 싶었다. 나는 비교적 아이에 대한 집착이 크고 내가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이상이 있었기에 느낀 슬픔이 더 컸을 뿐이다. 내가 겪은 시간들이 보편적인 슬픔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특별하다거나, 특히 더 슬픈 것이라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슬픔이란, 내가 겪어보지 않아도 충분이 가늠할 수 있으며 상상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다. 개인적인 경험이나 지식이 없이도, 당사자가 구구절절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는 아픔이나 슬픔이다. 가령, 지독한 가난,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 신체의 한 부분의 커다란 부상, 들을 수 없거나, 볼 수 없는 답답함 등등이 그렇다. 이런 슬픔들과 난임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의 경중을 따지려는 게 아니다. 어떤 이는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습득이었던, 본능적으로 알던 사람들은 보편적인 슬픔에는 쉽게 동정하고 연민을 느끼며 안타까워한다. 난임이란 건 그런 감정들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같은 난임이라도 원인과 결과, 과정 모두 너무 다르고 그들에게 아이를 가지는 것이 차지하는 의미가 또 제각각이다. 그래서 같은 난임인 사람들끼리도 서로 상처를 주고받기 쉽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은 겪거나 겪을 또는 겪고 있을 그런 감정이 아닌지라 이해를 구하기도 어렵고 공감을 얻기도 힘들다.
내게 슬픔이 되는 존재가 나를 포함한 거의 모두에게 당연하면 당연할수록 이해하기 쉽고 부재가 나와 무관할수록 이해하기 어렵다. 그 차이가 보편성의 차이다. 보편적인 슬픔처럼 내 경험과 지식으로 그 아픔을 들여다보아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난임이다.
내가 겪어보니 그랬다. 더불어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말들로 위로했었는지도 알았다.
나는 더 이상 우리 부부에게 아이에 관한 기적이 생기길 바라거나 기도하지 않는다. 아이보다 더 중요한 건 나와 내 남편, 우리라는 남편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언젠가 남편이 했던 말처럼 우리의 노후가 쓸쓸하지 않기 위해서, 가족을 완성하기 위해서, 아이를 좋아해서, 그런 이유로 아이를 원할 게 아니라, 혼자였던 우리 둘이 만나 행복했던 것처럼 우리 둘에게 아이가 생겨서 더 행복해져야 한다. 아이로 인한 희로애락은 그다음 이야기이다. 그 과정 속의 우리가 이렇게 불행하고 힘들다면 아이를 가지려 했던 그 마음도 이미 퇴색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런 간단한 생각을 당시에는 스스로 생각하지 못했다가 마음을 비우고 알게 됐다.
사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포기하고 단념한다는 말과 매우 닮았다. 때문에 난임인 사람들이 마음을 비우기가 어려운 것이라 생각한다. 마음을 비우면 생긴다. 와 같은 말로 위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얻기 위해 마음을 비우는 게 아니라 정말 단념해야 마음이란 게 비워진다.
이식 조차 기적이었던 우리에게 그런 인위적인 기적도 없이 또 다른 엄청난 기적(자연 임신)은 있을 수 없기에 우리에게 비우는 것은 진짜로 모두 단념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두 번째 기적도 바람대로 되지 않고 나서야, 마음을 정말 비우기 시작했다.
아직도, 여전히, 친정 식구들은 바라는 것 같다. 한 번이라도 시험관을 더 하길, 우리에게 말도 안 되는 기적이 올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 남편과 나는 이식을 두 번이나 하고 결과를 기다리면서 나름 행복했다. 이제 우리가 그만하기로 한다면 어딘지 우리의 의지로 마음을 접는 느낌이었다. 삼자가 보기에 별 차이가 없겠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식 조차 못해보고 단념하는 것은 어쩐지 우리의 선택이 아닌 실패의 느낌이 더 컸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시험관이 끝나고 남편은 끊임없이 내게 사랑을 말했고, 나와 남편, 우리의 의미를 더욱 이야기했다. 우리는 어쩌면 미친척하고 한 번은 더 시험관을 할지도 모른다. 마지막 다섯 번째처럼 타이밍이 맞고 흐름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때에는 지금까지 처럼 기대하고 실망하는 그런 마음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또 어쩌면 지난 다섯 번째 시도가 우리의 마지막이었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아이 없이 살거나, 또 다른 방법으로 우리가 아이와 함께 사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의 우리도 조금씩 상상이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