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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아 Mar 25. 2016

로봇 407의 여름 (14화)

7. 로봇의 친구(2)

“네, 박사님이 제게 만들어주신 기능인 가요?”

“아니, 그럴 리가. 나는 고대어를 모른다. 광장이라... 꼭 한번 가봐야겠군.”


저 표정을 보니 고대어나 광장 따윈 아무 관심도 없었나 보다.


“우리 깡통이가 벌써 그런 것도 배웠단 말이냐? 기특한걸.”

“로봇도 무언가 배울 수 있나요? 만들 때 넣으면 되잖아요? 대짝이의 일기예보 기능처럼요.”

“음...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너는 내가 그렇게 만들지 않았단다.”


박사님은 멈췄던 손을 다시 기계로 가져가며 말을 이었다.


“너도 알겠지만 나는 천재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성격이나 생활면에선 평번한 사람보다 아주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지. 천재 과학자로서는 큰 흠은 아니다만 말이다.”


아주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말대꾸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아는 것만 들어간다면 좋은 로봇을 만들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넌 학습 가능한 로봇으로 만들었단다. 넌 모르겠지만 처음 만들었을 땐 말도 못 했단다. 지금 네가 알고 있는 것들은 전부 나나 마을 사람들이 가르친 거지. 말하자면 신생아랑 비슷한 거다. 그래도 신체능력이나 학습 속도가 아기보단 훨씬 빨랐지. 후후. 어떠냐? 대단하지 않니?”


이렇게 듣고 보니 정말 대단해 보였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박사님보다 더 똑똑해질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자신의 단점까지 간파하고 발전적인 물건을 만드는 박사라니, 내가 생각해도 감동적이다.”


아, 다음 말은 듣지 말 걸 그랬다. 나와의 대화에서 기분이 좋아진 척 박사님은 리안 아주머니가 가져다준 포도주를 마시고 깊게 잠들어버렸다. 약간의 주정으로 꽤 긴 시간 잘난 척을 들어줘야 했지만, 어차피 잠도 안 자는 내겐 별로 큰일도 아니다. 


Copyright © By Young-a. All right reserved.



아침이 밝자마자 박사님을 깨우고 다시 천문대 자리로 나왔다. 내일이면 우리도 떠나야 하니 힘든 일은 거의 끝내고 싶었다. 우리는 마을 사람들보다도 먼저 일을 시작했다. 


“미... 로가... 안 보이... 인다.”


한참 일에 집중해서 알지 못했는데, 정오가 되도록 미로가 보이지 않았다. 어제 내 말 때문인지 아직도 삐져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 근처에 있겠지.


관심 있게 주위를 보니 역시나 미로가 숨어있는 게 보였다. 삐졌지만 아이는 아이인 모양이다.


나는 미로에게 다가갔다. 


“궁금한 게 있으면 그냥 물어봐도 돼.”

“안 궁금해!”

“그래? 우린 내일 가는데...”

“내일?”


미로는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그런 아이가 조금 귀여운 것 같았다. 


미로는 머뭇머뭇하면서 오후 내내 나를 졸졸 쫓아다녔다.


“로봇은 뭐 먹고살아?”


그리곤 조금 익숙해졌는지 폭풍 질문을 쏟아냈다.


“깡통이는 왜 몸이 두 개야?”

“다른 로봇도 알아?”


로봇을 처음 보는 꼬마에게 대짝이 보다는 작은 내가 더 만만해 보였나 보다.


“깡통이는 몇 살이야?”


내가 몇 살이더라? 아니, 로봇은 나이를 어떻게 따져야 하지?


“미로는 몇 살인데?”

“나는 아홉 살.”

“나도 비슷해.”

“깡통이는 대짝이랑 친구야?”

“글쎄. 아마도?”

“좋겠다. 나는 친구 없어. 어른들이 나랑 친구 안 해줘. 다들 바쁘데.”


생각해보니 이 작은 마을에 미로의 또래가 보이지 않았다. 심심해서 날 따라다녔구나.


“깡통이도 작아서 싫어?”

“미로는 커서 곧 어른이 될 텐데, 뭐가 걱정이야.”

“그럼, 깡통이도 커서 대짝이만 해지는 거야?”


이게 무슨 소린가? 하긴 아이의 눈에는 나와 대짝이가 아이와 어른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생각해 보니, 처음에 대짝이가 아닌 나에게만 돌멩이를 던진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내가 자기 또래의 친구처럼 보였겠지.


“나는 아니야. 로봇은 크지 않아.”

“그럼 나는 왜 커져?”

“내가 아는 한 사람은 누구나 어른이 돼. 로봇은 다르지.”

“아빠만큼 커질까?”

“응. 분명히 그럴걸.”

“그래도 난 깡통이랑 친구할래.”

“엄청 고맙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친구를 얻었다. 그러고 보면 대짝이가 내 첫 번째 친구일까? 아니면 긴 아저씨? 이렇게 따져보니 생각보다 친구가 많은 듯했다. 


해가 저물었을 땐 일이 거의 끝나 있었다. 대짝이와 나는 이틀 동안 꽤 많은 돌을 날라서 이제 쌓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정말 고마운걸. 이렇게 일을 쉽게 만들어주다니.”


열댓 명 되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대짝이를 칭찬해주었다. 우리 마을 사람들도 이곳에 와서 좀 배워야 할 텐데.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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