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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yon Mar 06. 2022

<아무튼, 식물> 임이랑

나는 식물을 기르고 가꾸는 것을 귀찮아했다. 인테리어 용으로 식물을 사다 놓으면 말라 죽이기 일 수였다. 학창 시절에는 항상 부모님이 식물을 가꿔주셨고, 대학교 기숙사에 살 때는 식물을 기를 상상조차 하지 않았고, 졸업하고 동생과 둘이서 자취를 할 때는 동생이 사다 놓은 식물을 관상만 하였고, 식물에 물을 주고 분갈이를 해주고 가꾸는 건 동생의 몫이었다.

그러다가 동생도 독립을 하고 온전히 나 혼자 살게 되었을 때, 그리고 사다 놓기만 했던 (귀찮은 일은 동생이 해줬으니) 식물들과 함께 살게 되니 어쩔 수 없이 식물을 가꾸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줘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물론 개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으로도 충분하지 않은 식물들도 있었겠지만, 곧 나의 패턴(?)에 익숙해졌는지 (또는 그런 식물들은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렸는지) 식물들은 곧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줘도 잘 자라게 되었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자, 새로운 식물들을 사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중 하나는 곧 데리고 오자마자 진딧물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화학 약품을 치기 싫었던 나는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가며 우유 스프레이를 만들어 이파리에 우유를 뿌리고 화장솜으로 닦고 또 뿌리고 닦고를 몇 주간 반복하다가 지칠 때쯤, 우리 집에 방문한 부모님 손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버렸다. 처음으로 애정을 주고 진딧물과 사투를 벌이면서까지 지켜낸 식물이었기에 매우 속상했는데, 몇십 년 가드너의 짬밥(?)으로 말라비틀어진 모습에 가망이 없음을 판단하고 나라면 못했을 과감한 결정을 대신하신 거라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겨울이 찾아왔다. 온도에 대한 개념 없이 "물과 햇빛만 있으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식물을 베란다에 내내 두었다가, (또) 우리 집에 방문하신 부모님이 식물들이 얼어 죽는다며 모두 집안으로 들였다. 겨울이라 해가 짧아 베란다에 있는 식물을 그간 잘 살펴보지 못했는데, 상당수 많이 얼어있고 뿌리는 썩고 시들어있었다.


그렇게 집안으로 식물을 들이게 되니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주는 일이 더 수월해졌다. 눈에 띄니 자꾸 더 관찰하게 되고 시들시들해 보이는 식물은 물을 한번 더 주고, 흙이 아직도 축축한 식물은 이번 주는 건너뛰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분갈이라는 것도 해주게 되었다. 아직 겨울인데 분갈이를 해줘도 되는 건가 망설였지만, 이 나무는 나에게 지금 화분이 너무 좁다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분갈이를 해준 나무는 더 쑥쑥 자라고 있다.


이런 나를 지켜본 회사 동료 언니가 퇴사하면서 선물해준 책 "아무튼, 식물"의 이야기는 집안으로 식물을 들인 이후 나에게 일어났던 변화와 비슷한 변화를 쓴 것 같았다. 일주일에 한 번 식물에 물을 주고, 관찰하고, 오늘은 진딧물이 괴롭히고 있진 않은지, 솜깍지벌레로 가지치기를 당했던 식물에게 또 솜깍지벌레가 자리를 잡지는 않았는지, 나방 더듬이 같이 작았던 이파리가 오늘은 얼마나 컸는지, 오늘은 얼마나 많은 꽃대가 올라오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으면 복잡했던 머리가 비워지는 느낌이다.


한 번씩 뇌를 꺼내서 물로 씻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많은 생각들을 멈추고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생각. 그럴 수 있는 방법으로는 스쿠버다이빙이 적격이었는데 여러모로 여행을 하기가 어려워진 요즘, 걷다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면 생각이 멈춰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적이 있다. 그리고 하나 더 깨달은 방법, 식물을 가꾸는 순간만큼은 생각이 멈춰진다.


"아무튼, 식물"이라는 책 덕에 다시 한번 내 식물들을 검색해보고 이들이 좋아하는 걸 찾아주고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일조량이 많아졌으니 오늘 같은 주말엔 햇빛을 좋아하는 식물들을 베란다로 보내서 창문을 열어 통풍도 시켜주고 햇빛도 쬐어준다.

그리고 나도 남향에 큰 창문이 있는 집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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