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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르도 Apr 30. 2024

어른이 되어 바둑을 배우며 느낀 점

취미 생활로부터 교훈 얻기

내 아내는 바둑을 잘 둔다. 어릴 때 배웠고, 타고난 재능과 기질도 잘 맞아 아마추어 실력자 수준이다. 바둑을 매우 좋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나도 한번 배워볼까?'라고 물어봤다. 아내가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나는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보다 몸을 더 잘 쓰는 편이다. 머리가 굵어진 뒤에 바둑을 배우기 시작하니 골이 아팠다. 가로세로 19줄씩 그어져 있는 바둑판은 망망대해처럼 보이고, 다음 수는 어떻게 둬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어렵던 바둑도 조금씩 늘었고 왕초보 딱지를 떼고 초급자가 되었다. 아직도 형편없고 매번 어이없게 패배하지만 그런대로 바둑에 재미를 붙이는 중이다. 


사람들은 바둑을 인생 혹은 전쟁과 비교한다.  조금씩 바둑이 늘면서 몸과 머리로 직접 깨닫는 부분이 있어 이번 기회에 글로 정리한다.


바둑은 상대와 겨루는 놀이점을 명심하자.

바둑은 흰 돌과 검은 돌 중 누가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냐의 싸움이다. 초급자에게는 이 기초적인 규칙이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 상대의 다음 수를 예상하지 못하고 내가 두고 싶은 자리만 눈이 간다. 내가 원하는 모양새는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없다. 내가 욕심나는 자리는 상대도 당연히 욕심을 내기 때문이다.


내가 두고 싶은 자리는 상대가 두고 싶은 자리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그리고 싶은 모양은 상대가 제일 방해하고 싶은 모양이다. 바둑 초보는 내가 두고 싶은 자리에 돌을 두고, 상대에게 절대 여지를 주지 않고 원했던 대로 다 갖고 싶어 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수는 내 돌을 더 위험하게 만드는 무리수다. 


바둑을 잘 두려면 내가 둬야 하고 상대도 쉽사리 견제하지 못하는 중간점에 둘 줄 알아야 한다. 상대를 흔들기도 하고, 작은 집은 적당히 내어주고, 안정적으로 집을 만들어야 한다. 바둑은 혼자서 두는 것이 아니니까.


인생도 마찬가지다.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다. 함께 살 줄 알아야 한다. 가족, 학교 친구, 직장 동료, 고객 등 다양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산다. 사람이 인생은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라고 인지하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이 철들었다고 말한다.


한 번에 한 개의 돌만 둘 수 있다.

이것도 바둑의 아주 기본적인 규칙이다. 하지만 여기서 바둑의 묘미가 발생한다. 바둑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초반에는 빈 공간이 많고 내가 두고 싶은 곳은 무수하게 많다. 두고 싶은 곳은 너무 많지만 어딜 둬야 하는지 모르는 초보는 대국의 초반 도입이 너무 아득하게 느껴진다.


만약 동시에 여러 개 둘 수 있었다면 원하는 대로 마구 둘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차례에 단 한 개의 돌만 허락되기에 상대와 수 싸움이 일어나고 치밀한 형세판단을 요구한다. 바둑은 매 순간 최고의 수를 둘 것을 강요한다. 내 차례가 되면 지금 이 형세에서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가 제일 높은 자리는 어디인지 파악해야 한다. 우선순위를 파악하는 분석에서 실력이 나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한 번에 많은 것을 이루려고 하면 하나도 이루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부터 우선 달성하기 위해 집중해야 성취할 수 있다.


자꾸 당하다 보면 어느 순간 수가 보인다.

사실 지금도 바둑이 싫다. 좋으면서도 너무 밉다. 아내의 독려와 응원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바둑 같은 것은 때려치우고 태평하게 살았을 것이다. 이 같잖은 돌을 두는 행위로 인해 늘 씁쓸한 패배감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스포츠를 즐기는 편이라 다양한 취미를 경험했는데, 바둑만큼 패배가 아픈 활동도 없다. 상대에게 먹히면 내 돌이 덜어지고, 돌 하나 두는 신체적 에너지 이상으로 머릿속으로 절실하게 궁리를 하는 정신적 에너지가 상당하다.


바둑은 패턴 인지 싸움이다. 어느 자리에 어떤 모양을 만들어낼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많은 형세를 직접 두면서 익혀야 한다. 익히지 않은 모양은 절대 알 수가 없다. 최근 13급으로 급수가 상승했는데도 스트레스는 더욱 받는다. 상수를 만나면 항상 당하기 때문이다. 상대는 아무렇지 않게 두는데 나는 끙끙거린다. 다음 수가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패턴이기 때문이다. 


영어 공부를 할 때 영어 듣기가 전혀 안되다가 공부를 하면 어느 순간 영어가 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바둑도 비슷하다. 매번 졌던 모양을 반복하면 어느 순간 보인다. 그래서 다시 쉽게 당하지 않는다. 그리고 알게 된 패턴과 형세는 절대 똑같이 당하지 않는다. 수를 치밀하게 계산하기보다는 내 머리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성취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도 씁쓸한 실패는 반드시 필요하다. 실패를 전혀 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 무엇도 도전하지 않으면 된다고 했다. 내가 좀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꾸 깨지면서 그 실패를 교훈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도전이 무서운 이유는 뼈아픈 실패가 기다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지만, 실패를 하지 않으면 절대 그다음 수를 알 수 없다.


지금도 여전히 바둑을 두면서 씩씩거리거나, 의도치 않은 승리에 아이처럼 기뻐하는 초보 바둑인이다. 어디서 바둑으로 얻은 교훈을 글로 썼다고 하면 비웃음 당하기 쉬운 급수인데, 성인 초보일수록 더욱 느껴지는 교훈이라 글로 정리한다. 이 글을 본 바둑인은 작게나마 공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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