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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Dec 29. 2021

어느 장날

과일장사 체험기

2021년 12월 18일

우리 매형은 시장에서 과일장사를 한다. 일손이 부족할 때는 내가 가서 가끔 도와준다. 오늘은 영하 18도까지 내려갔다. 새벽 6시부터 과일을 내리기 시작하는데 너무 추워서 발에 감각이 없었다. 차라리 내가 고용주에게 고용된 거라면 적당히 요령도 부릴 텐데 가족일이라는 게 그러기가 쉽지 않다. 최대한 열심히 도와준다. 그래도 많이 부족하다. 장사꾼은 기본적으로 자신만의 루틴이 있고 5천 원짜리 과일을 파는 과정에도 신념이 있다. 그런 것들을 많이 배운다. 시장에는 여러 명의 장인이 있다. 매번 시의적절한 상품을 가져오는 장사의 신처럼 보이는 꽁지머리 아저씨, 주로 파, 양파, 브로콜리를 파는 아저씨, 그리고 호떡을 기계처럼 구워 내는 꽈배기 아줌마, 생선 손질의 달인 아줌마까지. 보고 있으면 눈이 떠억 벌어진다.


새벽부터 물건을 내리던 그들은 손님들이 오기 전에 커피를 나눠 마신다. 새벽에 마시는 맥심 커피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그러다 기분이 좋아지면 파를 양파 아저씨가 소주를 꺼낸다. 난로 위에 어묵탕을 대충 만들어 나눠준다. 그러면 여기저기 아저씨들이 모여든다. 아침부터 소주를 마시면 한기도 사라지고 더 힘내서 일할 수 있다며 나에게도 한잔 건넨다. 마냥 놀 수는 없기에 짧은 소주 회동은 금세 끝이 난다.


꽈배기 아줌마의 경영철학은 굉장히 특이하다. 한쪽에서는 계속해서 꽈배기와 찹쌀도넛을 만들고 손님들은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셀프로 담아야 한다. 심지어 설탕과 케첩도 셀프다. 대부분 단골이기 때문에 가격도 묻지 않고 계산한다. 여기서 신기한 게 100원이라도 계산이 틀리면 꽈배기 아줌마가 바로 잡아낸다. '언니! 100원 덜 내셨어~'하며 너스레를 떨며 100원을 더 받아낸다. 옆에서 보면 그 광경은 마치 농구선수의 노룩 패스를 보는듯하다. 평생을 기름 앞에서 꽈배기와 핫도그를 만들었다는 그 아줌마는 건물이 3 채라고 한다. 몇 백 원짜리 상품을 팔아 건물을 산 걸 보면 얼마나 고생했을지 상상이 안 간다. 수술도 2번이나 했단다.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가면 빨간 머리 통닭 아저씨가 계신다. 이 아저씨는 하도 유명해서 방송에도 몇 번씩이나 나왔다. 짭조름한 통닭 맛이 일품이어서 집에 갈 때 무조건 사가게 된다. 가끔 수원에 올라오면 그 아저씨 치킨이 먹고 싶다. 듣기로는 치킨 아저씨가 꽈배기 아줌마보다 훨씬 더 부자라는 소문이 돈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손님 규모라면 단가가 높은 통닭이 유리할 것이다. 통닭을 사려는 줄은 굉장히 길게 늘어서지만 아저씨의 실력 때문에 그리 많이 기다리진 않아도 된다. 통닭을 포장하면 아이들에게 맛보라며 닭다리나 날개를 하나씩 주신다. 기름 앞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도 아저씨는 미소를 잃지 않는다. 특히나 여름철에 시장은 가만있어도 짜증이 난다.


우리 매형은 가업으로 도매 과일장사를 하다가 독립하여 장날에 나오게 됐다. 그런데 내가 옆에서 보니 재고 문제가 항상 있는 것 같다. 과일은 팔지 못하면 썩어 버리고 그대로 폐기해야 한다. 앞서 말했던 꽈배기 아줌마나 통닭 아저씨는 재고 걱정이 없다. 만드는 족족 팔리기 때문이다. 꽈배기 아줌마 옆에는 저렴하게 옷을 파는 아저씨가 있는데 옷 역시 몇 년을 묵혀도 폐기 처분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재고 측면에서 굉장히 유리하다. 그렇기 때문에 장이 끝나가는데 물건이 많이 안 팔리면 내가 다 속이 탄다. 오늘 떼온 물건의 가격을 '물떼'라고 하는데 수시로 '물떼'만큼 팔았는지 확인한다.


올여름 매형은 수박을 골라달라는 손님에게 맨 밑에 수박을 골라주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그 이후로 힘쓰는 일을 하는 게 어렵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지만 시장에서 과일을 파는 일은 정말 힘들다. 5천 원짜리 귤을 팔기 위해 마케팅 기법도 필요하고 고객응대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시골 장사에서는 단골들이 중요한데 한번 사갔던 사람을 기억했다가 아는 체해주면 굉장히 좋아들 하신다. 시장에서 우리 매형이 제일 젊기 때문에 청년이 파는 과일가게로 유명한 것 같다. 매형의 가게에는 유독 단골이 많은데 어르신들이 들고 가기 무거운 것들을 직접 들어서 옮겨주고 한 번이라도 아는 척 더 해주고 이런 것들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요즘 들어 쉬운 일만 찾게 된다.

조금이라도 어려워 보이면 피하게 된다. 오늘도 장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조금의 반성을 갖고 오지만 이내 곧 있겠지. 그렇게 또 반성하고 잊고 반복이다.

신념을 가진 장사꾼들처럼 나도 선이 분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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