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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송비 Nov 08. 2019

전자음악 입문 6

음악처럼 만들기

선생님께서 지난 수업 마지막에 숙제를 내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단 다음 수업 시간은 정하는데, 만약에 숙제를 다 하지 못하시면 다음 수업을 미루는 것으로 하죠." 이 말이 큰 동력이 되었다. 숙제를 못해서 수업이 밀리는 것은 두 가지의 고통을 가져오는데, 첫번째는 괴로움의 연장이라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한문 선생(님이 아님)이 한자 쓰기 숙제로 노트 100쪽을 채워오라고 한 적이 있는데, 다 못해오면 두드려 패고는 그 다음 시간에 150쪽을 해오라 하고, 또 못해오면 또 두드려 패고 200쪽을 해오라고 (또 못해오니까 분량을 더 늘리진 않았는데, 와 지금 생각하니까 어처구니가 없네, 아무튼 이번 숙제가 그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왜 이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지만) 한 적이 있다. 야자 시간에 다들 기계처럼 노트에 한자를 적고 있었다. 아무튼 숙제를 하는 것은 약간 괴로운 시간을 보내는 일이고, 레슨을 미루는 것은 괴로운 그 시간을 연장시키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만 했다. 두 번째는 자존심의 문제였는데 숙제를 해가면 지킬 수 있는 것이었고 못해간다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은 맞지만 사실 자존심은 크게 중요하진 않다. 그러니까 자존심을 못지킴으로써 안 좋은 것은 없지만 지키면 좋은 것이기 때문에 기왕이 지키고 싶은 마음이라고 하면 되겠다. 


결론적으로 숙제를 했다. 주변에 온갖 사람들에게 숙제해야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 알리고 다녔다. 출퇴근 셔틀에서도 하고, 점심 시간에 커피 마시면서 수다 떠는 사이에서도 하고, 집에서 늦게까지 안 자고 하고, 이전 숙제들보다 많은 투자를 했다. 더 이상 어떻게 못하겠다는 순간이 왔을 때 그만 두었다. '더 이상 못할 것 같은 순간까지 무엇을 얼마나 했는가'가 수준을 판가름하는 어떤 지표같은 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측정하기 애매한 것의 정도를 판단하려는 습관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르겠다. 무엇이 되었든 어떤 기준을 두고 마음 속에서는 항상 줄을 세우고 있는 것 같다. 밤비에게 들려주었는데 '오~ 오오~'하는 반응이 나왔다. 약간 뿌듯했다. 그래도 더 잘하고 싶은데 더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 많았다. 선생님도 잘했다고 하셨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잘했다고 했을 때의 잘함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는데, 이런 생각 좀 그만 하자. 잘했다잖아.


숙제는 analog 혹은 wavetable을 이용해서 1분 30초 이상의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었다. 숙제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음악처럼 될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봤다. 내 수준에서 깨달은 것을 말해보면 이렇다.


1. 반복되는 패턴을 만든다. 트랙에 드럼을 쿵짝쿵짝 찍고, 베이스와 코드라인을 넣고 반복시킨다. 4마디를 만들면 된다. 

2. 시작은 1개의 트랙으로 하고, 서서히 한 트랙씩 붙여 나가면서 모든 소리가 다 나오게 만든다.

3. 계속 똑같은 것을 들으면 지겹기 때문에, 중간에 한두 트랙을 꺼버린다. 잠시 후에 껐던 것을 다시 켜고, 다른 트랙을 끈다. 나오는 소리의 배합을 바꾸는 것으로 변화를 주는 것이다.

4. 더 이상 바꿀만한 배합이 없으면 한두 트랙만 남기고 다 꺼버린다. 남은 트랙을 4마디 정도 내보내고 꺼버린다. 노래 끝.

5. 다른 소리를 쌓고 싶다면 새 트랙을 추가해도 되지만 이펙터를 잘 쓰면 다른 소리를 쌓을 수 있다.


이러면 조금 음악처럼 되는 것 같다. 선생님이 1분 30초 이상 만들라고 해서 정말 1분 30초를 간신히 넘겼다. bpm을 높였다면 1분 30초가 안 되었을 것이다. 정말 간신히 채웠다. (ㅋㅋ) 이것보다 더 긴 것을 만들려면 또 다른 깨달음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숙제는 선생님이 살짝 손을 봐주신 것으로 올린다.



숙제 때문에 괴로울 때 한강에 간 것과 비트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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