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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May 28. 2024

일확천금의 꿈

쉰 살의 유학일기 - 봄편 #7

한국에서도 복권은 사 본 적이 거의 없다.

재작년인가, 고3이던 막둥이가 아빠 생일선물로 복권을 사려고 했는데 미성년자라 살 수 없다며 돈을 줄 테니 엄마가 대신 사달라고 했었는데, 그때 ‘아, 미성년자에게는 복권을 안 파는구나’ 하고 처음 알았을 만큼 그쪽엔 관심이 없었다.


작년 연말, 오도리역 지하도에 사람들이 줄을 어마어마하게 길게 서 있길래 궁금해서 봤더니 복권 사는 줄이었다.

일본인들은 연례행사처럼 연말에 점보복권을 산다더라.

일본의 경우 '서민의 꿈에 세금을 매길 수는 없다'는 이유로 과세하지 않아 복권 당첨자는 소득세 없이 당첨금을 그대로 받는다고 한다.

나도 저 긴 줄 끝에 서서 행운을 잡아볼까? 외국인에게도 행운이 찾아올까? 싶어 줄 끝을 찾았지만 도저히 그날 안으로 복권을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포기했었다.

이 복권집이 당첨명당인지 뻥 아니고 줄이 거진 1킬로는 되는 것 같았다. 지하도 벽을 따라 늘어선 줄이 뒤로 갈수록 세 줄 네 줄이 되면서 알바생이 ‘여기가 맨 끝입니다’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서서 교통정리를 하는 상황이었다.


이 날 포기했었던 복권을 샀다!

오도리역 지하도 복권 명당에서는 아니고 우리 동네 마트 복권판매대에서 샀다.

복권 종류도 하도 여러 가지라 그냥 한국에서 딸내미 심부름으로 사봤던 번호 6개 적는 로또 6을 샀다.

200엔짜리 5개, 1000엔.

어차피 운에 맡길 거 모두 자동으로 사려 했는데 여전히 아날로그인 이 나라는 자동인 듯 자동 아닌 자동 같은 수동이었다.

노란 고래가 반겨주는 기계의 버튼을 누르면 랜덤으로 번호 6개가 뜬다.

그 번호를 로또 용지의 번호에 그대로 칠하면 자동, 그 번호와 내가 생각한 아무 번호를 대충 섞어 칠하면 반자동, 기계 사용 안 하고 내 맘대로 칠하면 수동이다.

기계 옆에 몽당연필이 몇 자루 놓여있었고 잘못 칠한 번호는 직원에게 말하면 지우개를 줘서 지울 수 있다.

숫자를 마킹한 로또용지와 돈을 직원에게 주면 직원이 영수증을 준다.


나와 같이 로또를 산 순돌엄마랑 집에 오면서 당첨금으로 머 할까 고민했다.

당첨금을 한국으로 갖고 가면 세금을 왕창 떼이니까 우체국 통장에 넣어놓고 일본에 올 때마다 꺼내 써야겠다.

아니, 일단 내가 갖고 싶은 핑크색 스즈키 허슬러 한대 사자!

순돌엄마도 한 대 사줄게, 우리 커플로 타자!

그래? 다시 말해봐, 이건 녹음해야 돼.


결과는… 버킷리스트 하나 채운 걸로 끝.

며칠 즐거웠다. 그럼 됐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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