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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k May 25. 2021

그 얼굴에 스친 빛을 읽었다

얼굴을 주의깊게 들여다 볼때면 시간이 느려진다

그의 얼굴을 가까이 볼일은 많지 않다. 우연히 지나다 멈춰 몇마디 나눌 때면 평소보다 가까워진다. 난 3, 4cm 남짓의 구두를 신었고 눈높이가 가까워졌다. 그는 말갛고 예쁜 얼굴을 가졌고, 생각에 잠기거나 천천히 웃을 때면 멍하게 바라보게 될 정도로 수려하다. 내가 그에게 반해있고, 얼굴 선이라던지 피부색과 결, 얼굴 근육이 움직이는 모양 따위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객관적 기준/의미없겠지만/은 확인할 바 없다)


내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그에게 스쳐지나가는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 좋다. 얼굴과 몸이 가까이 있고 매체를 통하지 않은 직접적인 반응/특히 얼굴/을 들여다 볼 때면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신기한 경험이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느껴질 때가 있다. 타인의 반응이 슬로우모션으로 인입될 때가. 일반적인 시간 흐름과 유리된 다른 차원을 겪는 느낌, 더 섬세하게 느끼고 싶다. 오감과 육감을 발달시키고 통제하고 싶다.


그와 하는 대부분의 대화는 메신저로 이루어지고 얼굴을 맞댈 일은 적다. 이따금 곁에 가서 직접 닿는 순간들이 맛있다. 달고 진하고 자극적이다. 자주 다가가서 닿고 싶다. 기회가 있을 때 많이 다가가고 접촉할 것을 그랬나 아쉽기까지 하다. 제법 많이 다가갔다고 생각했지만 돌아서니 아깝다. 주어진 시간이 짧았고 원하는 것을 취하지 못할 그의 상황과 나의 성향도 있었다. 미련이 남다가도 나름 적극적으로 표현했으니 되었다 싶기도 하다. 많이 발전했다. 무조건 꽁꽁 숨기고 숨막혀 했는데 지금은 숨통 트일 정도는 됐다. 다음에는, 그래, 이 다음에는 더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능숙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겪은 이런 순간들이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 수년 전 좋아했던 사람처럼, 뜨문뜨문 단편적이고 선명하게 남는 순간들이 있다. 빛의 강도나 몸의 방향, 표정 같은 것이 생생하다. 좋아하던 섬세한 얼굴이 떠오를 때면 아련한 기분이 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흘러버린 시간이지만 기억이 주는 힘이 있다. 아스라한 에너지 덩어리가 된다. 잊고 싶지 않아서 써본다. 어딘가에 남겨두면 손 뻗어 더듬을 수 있으니까. 연속성 없고 목적 없는 기억의 부스러기들을 남겨두면 기쁨이 된다. 슬프거나 애틋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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