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끝나는 순간
영화와 소설, 현실을 통틀어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잔인한 이별 장면은 영화 <행복>에 나온다. 2007년 개봉해 117만 명의 관객 수를 기록했으니 모르는 사람이 더 많겠다. 임수정과 황정민이 나오는 사랑 영화다. 배경은 시골의 한 요양원, 줄거리는 이렇다. 서울에서 개차반처럼 살던 황정민이 병을 얻고 도망치듯 시골의 요양원으로 와서 똑같이 아프고, 그러나 자신과 다르게 순수한 임수정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지겨워지고, 도망을 가고, 다시 돌아왔지만 이미 임수정은 죽고 난 뒤라 뒤늦은 후회로 땅을 치고 눈물 흘린다는, 그 시대의 흔하디 흔하게 진부한 사랑 이야기.
10년이 넘게 지난 뒤에도 내가 이 영화를 기억하는 이유는 한 장면 때문이다. 영화에서 은희(임수정)는 앓고 있는 병 때문에 밥을 굉장히 천천히 먹는다. 영화 중후반부에 영수(황정민)와 은희가 시골 방 안에서 상을 펴놓고 밥을 먹는 장면이 나오고, 영수가 은희를 물끄러미 보며 건조하게 내뱉는다.
"은희야, 너 밥 천천히 먹는 거 지겹지 않니?
난 지겨운데"
와, 이 잔인함. 영화관 안에서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저 잔인함에 치가 떨린다. 그 한마디로 알 수 있었다. 영수의 사랑이 끝났구나. 자신의 건강을 회복하게 해 준 시골의 평온함도, 은희의 순박함에도 다 질려버렸구나.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져버린 걸 굳이 저렇게까지 잔인하게 얘기하다니. 나쁜 사람. 그냥 헤어지자고 하면 되잖아, 굳이 밥 먹는 모습으로 트집 잡을 건 없잖아.
그때 알았던 것 같다. 먹는 모습만 봐도 예쁘고, 네 입에 들어가도 내 배가 부르는 것처럼 느껴지다가 먹는 모습조차 싫어져 버리며 사랑이 끝나는구나.
그리고 몇 년 뒤 바젤 미술관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은 그림 한 점을 만났다. 오스카 코코슈카의 <바람의 신부(Bride of the Wind)>. 이 그림 앞에서 발이 묶인 듯 한참을 떠나지 못했다.
그림에 얽힌 이야기는 돌아와서 알았다. 그림의 모델은 화가 자신과 사랑하던 연인 알마. 알마는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지성으로 끊임없는 남성들의 구애를 받았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 작가 프란츠 베르펠 등 쟁쟁한 사람이었고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도 알마를 스쳐간 연인이었다. 오스카 코코슈카는 알마에게 첫눈에 반했고, 열렬히 구애했다. 둘은 잠깐 연인이었으나 그 사랑은 코코슈카의 바람처럼 결혼까지 이어지지 않았고, 불안한 사랑은 기억은 <바람의 신부>로 남았다.
태풍 속에 고요히 잠든 여인, 그러나 퀭하게 뜬눈으로 손가락을 하염없이 만지작거리고 있는 남자. 아마 수많은 밤을 혼자 뒤척였겠지. 떠나가는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단어를 헤아렸겠지. 그렇게 쉽사리 지나가지 않는 밤을 온몸으로 느꼈겠지. 사랑하는 연인이 떠날까 불안에 떠는 모습이 내 발길을 붙잡은 건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미 애진작에 끝난 사랑을 붙잡고 있던 나에게 주는 경고 같았다.
사랑이 끝난 순간을 매섭게 알려주던 영화 속 장면과 한 점의 그림. 이미 사랑을 끝낸 사람은 동요없는 얼굴로 잔인한 대사를 던지고, 상대방의 불안을 외면한다. 사랑이 격정과 열정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의 사랑이 끝날까, 혹은 상대방의 사랑이 끝날까봐.
사랑의 다양한 얼굴을 알아버린 지금은 전처럼 이 그림이 슬프게 보이지 않는다. 권태와 지루함은 평온함과 손을 잡고 오는 말이니까. 그러나 여전히 영수는 참 나쁘다고 생각한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는데. 영수 이 나쁜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