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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Mar 11. 2024

할머니의 주전자

떠난 사람이 그리워지는 계절에

할머니 댁에 가면 늘 차를 마실 수 있었다. 아마도 수돗물을 끓여 만든 차일 그것은 결명자이거나 둥글레이거나 때로는 보리차였다. 구수한 맛이 나는 물을 조심스레 컵에 따라주며 맛이 어떠느냐 물으시던 할머니.


때로 그 차는 쑥버무리와 함께 나오기도 했는데, 마땅히  줄 것이 없다며 미안한 기색으로 갖고 나오시는 그 쑥버무리는 늘 맛이 좋았다. 그래서 맛있다고 얘기하면 소녀처럼 환하게 웃으시면서 “이게 뭐가 맛있느냐”고 하셨었다. 쑥버무리는 배고프던 시절에 뒷산에 나가 쑥을 뜯어와 만들어 먹던 음식이었다고.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쑥버무리가 맛있다는 나의 말을 기억해두셨는지 그 이후에 종종 할머니 댁을 방문하면 늘 쑥버무리를 준비해 차와 함께 주셨다.


여름철엔 스테인리스 주전자에 가득 끓여 한 김 식혔다가 냉장고 속 물통에서 시원하게 나왔고 바람이 차가워지는 계절엔 주전자 그대로 한번 더 끓여 컵에 담긴 뜨거운 김이모락 모락 나던 그 차는 할머니의 사랑이 짙게 배어 언제나따뜻한 사랑의 향기가 났다.

Photo by Kowit Phothis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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