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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eze Nov 26. 2024

그들은 자면서 왜 웃었을까?

제제의 학교를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횡단보도에 잠시 멈춰서서 확인한 페이스북에서 류시화 시인이 44분 전에 공개한 신작 시를 읽었다. 제목은 <자면서 웃는다> 였고, 댓글에는 그 시를 쓰며 들었던 멘델스존의 곡도 공유되어 있었다.

공명이 일어나는 존재의 작품은 마치 계주 달리기의 바통처럼 내게로 와 이어달리기를 시작한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작은 퀴디치 볼처럼 생긴 나만의 상상의 날개가 위이이잉~~하며 날아오른다.


자면서 웃는다,
그들은 자면서 왜 웃었을까?


 오늘이란 장막 속에서 고된 현실의 꿈 한 편을 걸죽하게 꾸고 난 후 모두들 잠이 들어 품 속에 안기어 쉰다. 마치 레이싱 경주에서 레이싱 차량이 피트레인으로 들어가 연료를 보충하거나 타이어 교체를 하는 등 유지 보수를 하는 피트 스탑에서처럼 말이다. 레이싱 차량을 정비해주는 피트 크루와 같이 하룻동안 살아낸 우리를 정화하고 정비하고 보충해주는 수호천사라 부를 수 있는 영혼의 크루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그들은 자면서 웃는 건 아닐까. 이런 상상을 하고 있자니 무언가 포근하게 나를 감싸는 느낌이 든다. 부들부들하고 따뜻한 담요에 폭삭 안긴 것 같다.


삶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시험지를 풀고, 오늘이란 무대 위에서 각자의 시나리오를 거하게 찍고, 각자의 트랙에서 경주를 한다. 마음이 마를 때마다 갈증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취향에 따라 이것 저것 골라 마시고, 어떨 땐 시원하게 마셨던 그것이 더욱 공허하게 만들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도 '훗, 삶이란 후후훗' 웃어버리는 유머를 잃지 말자고 그리고 나의 갈증으로 남 탓의 화살을 쏘아버리지 말자고 선택하며 나는 간다. 그렇게 가면서 울고 웃고, 자면서 웃는다.




<자면서 웃는다>


엄마가 버리고 떠난 아이가

자면서 웃는다


연인에게서 결별 통보를 받은 청년이

자면서 웃는다


학교에서 따돌림당하는 소녀가

자면서 웃는다


직장에서 해고된 가장이

자면서 웃는다


다리 대신 절단된 면이 있는 노숙자가

자면서 웃는다


암 선고를 받은 여인이

자면서 웃는다


국경 넘어 도착한 나라에서 거부당한 난민이

자면서 웃는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전장의 병사가

자면서 웃는다


낯선 나라로 시집 온 이국의 여성이

자면서 웃는다


단칸방에서 개와 단둘이 사는 노인이

자면서 웃는다


맡을 배역 없는 무명 배우가

자면서 웃는다


회전하는 지구 행성에 등을 대고 누워

모두가 자면서 웃는다


- 류시화

신작 시집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중에서

출처 : 류시화 시인 페이스북




글을 쓴 후 다시 류시화 시인의 피드를 보니 사람들이 시 해석을 어려워하여 댓글로 친히 해설을 써두셨다. 그리고 뼈때리는 말씀도 함께!!

 '이렇게 해설하듯 쓰면 시가 아니며, 시적 상상을 죽이는 일이 됩니다. 시를 설명하면 세상에 시는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오늘밤, 자면서 웃으시기를.'  

그러하다. 시인은 시를 출산을 하는 사람이고, 그 시를 돌보고 키우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나는 다른 예술 작품들이 다 마찬가지겠지만은 예술가의 몫은 출산이고, 그 예술을 향유하는 자들의 몫은 각자의 삶으로 데리고 와 잘 돌보고 키우며 자신의 삶이란 작품의 에너지로 연결시키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의 퀴디치 볼처럼 생긴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펴고 도착한 나의 상상의 나래와 류시화 시인의 해설 나라는 문자로는 닮은 듯 달라보이지만 문자 너머의 그 곳은 아주 닮은 포근함이 느껴진다.

그래요, 우리 오늘 밤, 자면서 웃어요.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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