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본질적으로 창의적이고, 잠재력이 풍부하며, 전인적이다”
이 기본 전제가 존중되지 않는 배려와 존중이 어디까지 진실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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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를 안다고 말한다>
내가 바다 같은 존재라고 말하면서
당신은 왜 고요하고 평온한 바다만 상상하는가
감정의 파도가 일고
불안정한 단어들이 충돌하고
현실과 비현실의 물살 가르며 극에서 극으로
흑등고래 잠행하는 바다는 내가 아닌가
마음 주었던 자리마다
따개비가 문신 같은 흉터 자국 남기고
기억의 성게 가시에 찔려 파란 피 흘리는
이 해안은 나의 해안이 아닌가
내 삶이 노래라는 걸 이해한다면서
왜 낭만적인 사랑 노래만 기대하는가
낮에도 밤에도 난해한 가사 중얼거리는
이 고장 난 심장은 내 심장이 아닌가
생나무를 찢는 듯한
내 안에 사는 외침은 노래가 아닌가
당신은 나를 안다고 말하면서
소금기 하얗게 말라 가는 바다와
강박적으로 상처를 핥고 지나가는 자책의 빙하는
왜 외면하는가
당신이 한 번도 항해한 적 없는
섬섬히 숨 가쁜 별들 가득한 이 대양은
내가 아닌가
내 안에 우주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고독마저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감정의 폭발과
모음을 떠난 자음 같은 떠돌이별은
왜 내가 아닌가
당신이 짐작할 수도 없는 평행 우주에서 온
나는 내가 아니어야만 하는가
- 류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