밧줄

by Breeze

새벽 운동을 다녀오는 길에 한 할아버지가 굵은 하얀 밧줄을 들고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어.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어서 밧줄에 눈이 갔지. 그리고 그 밧줄은 나도 모르고 있었던 꽁꽁 묶여 있던 나를 발견하게 해 주었어.


언니가 하늘나라 가기 1년 전쯤에 직접 실을 꼬아 만든 밧줄이 있는 상자를 발견했었어. 언니는 이 상자를 왜 열어보냐며 당황과 짜증 섞인 말투로 얼버무렸던 것 같아. 대수롭지 않았던 찰나였는데 오늘 할아버지의 하얀 밧줄을 보며 그때 내가 언니가 준비하던 죽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나를 채찍질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거야. 얼마나 오랫동안 내 안에 박혀있었던 가시였는지 모를 만큼 심장이 아팠고 뜨거운 눈물이 흘렀어.



힘들어하는 이가 있으면 조언이나 답을 주려고 하지 말고 곁에 있어주고 경청해 주고 사랑으로 있어주라고 하지. 그리고 위험한 시그널을 알아차리고 필요시엔 신고를 하라고 가르쳐주고 말이야. 다 공감이 가고, 동의하는 방향이야. 필요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식이 그렇듯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겐 이런 안내가 자책의 화살이 되었어. 내가 잘 못했던 걸까, 바꿀 수 있었는데 내가 놓쳐버린 것인가 하는 화살.


더 깊숙이 안으로 내려가보니 내 안에 ‘타인의 자유의지를 내가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더라.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말이 있으니까 내 사랑이 부족해서였나 싶었던 것이지. 그런데 신이 사랑이라면, 신이 모든 것을 이기지만 또 신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침범하지 않으신다고 하잖아. 사랑은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힘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사랑이 자유의지를 꺾는 것은 아니야. 만약 자유의지를 꺾으려 한다면 어쩌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역설이 되기도 하는 것이지.


우산아래​ 에서 허니가 놓아둔 사랑 조각.

함께했던 길에 갈림길이 나타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또한 사랑이라는 답으로 다가오는 밤이야.


끄덕끄덕, 서로 같은 길로 선택을 하든 다른 길을 선택을 하든 - 갈림길 앞에서 각자의 몫은 자기 몫 밖에 선택할 수 없다는 거야. 내가 바꿀 수 있는 존재는 ‘나‘ 밖에 없는 서늘한 진실에 슬퍼지기도 하고 자유해지기도 해.


오늘 아침처럼 밤에도 소리내어 말해.


내 탓이 아니야
내 잘 못이 아니야.





ps. 구름아래에 걸어놓은 작품들, 모두 참 좋더라. 튤립과 영혼이 돌아가는 시. 그리고 허니가 씌어 준 우산 아래 :)


허니가 이리 장례식 후 초대 해 준 전시에서ㅡ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버드나무 아래에서 기대어 쉬고 있는 이리처럼 보였어.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