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와 수용

by Breeze

허니, 이번 주는 편지가 좀 늦었디. 오늘 쓰는 글은 너에게 대화하는 형식이 아닌 내 생각을 정리한 ‘-다’체로 적어보려고 해. 평소와 다른 어투에 당황할까봐 쿠션 깔구 시작해본다응!^^






수 많은 관계의 아픔을 통해 드디어 ‘동의와 수용’의 차이를 배웠다.



동의는 머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고, 수용은 가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나에게 친한 친구란 동의는 하지 않을 수 있지만 무조건적 수용은 할 수 있는 사이다. 가족과도 같다. 부모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지만, 결국 사랑이기에 판단 대신 수용하는 것이다.


친구가 용기를 내어 의견을 전했다면 내 기준에서 동의가 되지 않더라도 그 맥락과 마음을 수용하는 것이다. 비록 언어로 표현 된 내용에는 동의가 되지 않더라도 그 표현에 깔린 진심, 맥락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수용이고, 사랑이다. 수용 후 흐르는 마음은 감사, 미안함, 용서, 사랑이다.


예전에는 동의와 수용을 받지 못하면 모두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말을 이상하게 했나, 내가 너무 심하게 말한 건가, 내가 내 생각에만 갇혀있었나’ 등등 말이다. 그런 경우, 대부분 상대들의 반응은 ‘너는 ~~~해’라는 판단언어로 나를 정의내리고, 수용과 동의를 구분하지 못한 나는 그들이 내린 판단이 맞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내가 잘 못한 점을 헤집으며 그들의 판단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애썼다. ’나는 그들이 말한대로 ~~~한 사람이야‘라며 말이다.


삶이 여러 차례 유사한 상황을 반복하여 알려 주어 이제는 깨우쳤다. 주체적 삶이란 동의와 수용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관계는 동의가 되지 않아도 서로 그 진심을 수용할 줄 아는 사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나를 떠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마저 곁에 있고 싶었기 때문에 그들을 머리로, 가슴으로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시도 했다. 그러나 건강한 관계는 나만 수용해서 되는 게 아니다. 상대도 나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를 수용하지 못한다고 해서 내 탓이 아니다. 네 탓이 아니다. 내가 모든 이들을 수용하지 못해도 괜찮다. 예전에는 그들의 말처럼 수용받지 못하거나 수용하지 못하면 내 탓이라서, 내가 틀려서 바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가스라스이팅의 Stop버튼을 눌렸다. 내가 ‘사랑’이란 중심 가치를 두고 의식적 주체적 선택을 했음에도 수용 하지 못하고, 수용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상대와 나는 결이 다르고 주파수가 다른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이 사실을 알아차리는데 40년이 걸렸다. 오래도 걸린 것 같다. 자기 성찰과 참회의 반복이었다. 이것을 알게 해 준 너무 소중했던 지난 인연에 모두 감사하다. 무척 사랑했던 이들이라 지금도 아리다.


한 사람의 진심이 온전히 닿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기쁨이다. 우린 모두 다른 언어와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니 서로 같이 공명하여 수용되는 것에 깊은 감사가 올라온다.


이제 내 삶에서 어떤 관계에 집중할 것인지는 심장이 안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내 존재의 가치를 알아봐주고 수용해주는 이들에게 집중하기




:+: 하이볼 가게에서 1차의 상황에 대한 내 의견을 말했지. 허니는 다른 의견을 나누었고. 응, 우린 달랐어. 수용과 동의를 구분하지 못한 나는 ‘내가 틀린 걸까?’라는 생각에 흔들렸었어. 허니 덕분에 자연스럽게 그 시간은 흘러갔고 우린 밤 새 이야기하다가 푹신한 침대에서 쿨쿨 잠이 들었지.

허니에게 그런 말 한 적이 있어. 허니는 하데스 같다고, 동굴 같다고. 이제야 알겠어. 난 허니의 수용을 느낀 거였어. 내 의견이 너와 다를 때도 블랙홀처럼 수용되는 느낌. 고마와. 사랑해.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