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두 얼굴의 야누스
1장. 두 얼굴의 야누스
협동조합과 시민시장
협동조합은 두 얼굴의 야누스다. 협동조합 기업의 지배구조가 난해한 것은 시장 코드와 사회적 코드라는 이중의 상징 코드로 정체성을 이루기 때문이다. 시장 코드가 지배적일 때는 협동조합을 일반 기업과 구분하기 어렵고, 사회적 코드가 우세할 때는 협동조합이 경제적으로 뒷걸음질치거나 한계 상황에 부딪치곤 한다. 한 가지 코드가 희생당하는 어느 극단의 상황이 벌어지면 결국 협동조합의 본성이 사라지고 정체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두 개 코드가 역동적 균형을 유지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전략적 보완성을 확보해 내는 것이 바로 21세기 협동조합 운동이 직면한 엄중한 도전이다.
협동조합은 호박벌에 비유되는데, 뉴턴의 물리학 법칙에 따르면 호박벌은 절대로 날 수 없다. 하지만 호박벌은 실제로 날아다닌다. 이처럼 통상의 경제학 이론으로는 협동조합은 장기적으로 실패해야 마땅하다. 협동조합의 경제 외적인 목적이 경제적 목적 달성에 장애 요인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이 나온 뒤 과학자들은 호박벌이 어떻게 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경제학 또한 자신의 사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개인의 합리성이 반드시 유일한 경제적 합리성은 아니라는 점을 겸손히 인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협동조합 같은 기업의 경제적 행동이 다른 동기들에 의해 작동하며, 자본주의 기업의 단순한 도구적 합리성과는 다르지만 나름의 합리성을 띄고 있다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경제가 아무리 중요해도 시장경제라는 상위의 속 아래에 있는 하위의 종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민시장은 경제와 사회의 격차를 줄여나가고, 개인이나 집단 누구나 경제적 게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통합의 메커니즘을 활성화하는 속성이 있다. 시민시장에서는 덜 가진 자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더 가진 자의 부를 재분배받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이 직접 생산에 참여하는 과정 그 자체를 통해 사회적 돌봄을 제공받게 된다.
시민시장 형태의 협동조합 기업 운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협동조합 진흥' 제도를 들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이탈리아의 협동조합들은 1992년 제정된 법에 따라 매년 영업 이익의 3%를 갹출해 다른 협동조합의 설립을 지원하는 협동기금을 조성한다. 말하자면 기금 지원으로 태어난 조합이 기금을 낸 조합과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게 되는 셈이다. 1844년 결성된 로치데일 조합의 주요 원칙 중 하나도 '협동조합 간의 협동'이었다. "협동조합은 지역과 국가 및 국제사회에서 서로 협력함으로써 조합원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봉사하고 협동조합을 강화해 나간다."
협동조합 강화 방안은 오랜 시간 변화해왔다. 그 중심의 정신은 협동조합이 소속 조합원에게 좋고 사회를 위해 정의로운 것이라면, 결코 시장의 경쟁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경쟁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로 공동의 목표를 함께 지향한다는 뜻이다. 공동의 목표란 시민인 소비자가 시장에 대해 일종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즉 서로 경쟁하는 여러 공급 대안 중에서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소수의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는 것은 소비자가 주권을 행사하기 어렵게 되는 것, 선택지를 좁게 두는 것을 의미한다.
진짜 중요한 경쟁은 가격 경쟁이 아니라 새것으로 대체하기 위해 옛것을 파괴하는 경쟁이다. 우리는 협동조합들이 행하는 특수한 경쟁(경쟁의 어원에 부합하는 경쟁) 형태를 경쟁적 협력이라고 일컫고, 독점적 경쟁을 지위 경쟁이라고 한다. 지위 경쟁이 시장을 지배한다면 큰 상처를 입지만 경쟁적 협력은 그 상처를 치유하는 강력한 효능을 갖는다.
공동선 대 전체선
공동선의 원리에서는 한쪽을 희생하고 다른 쪽을 보태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위해 개인의 후생을 희생하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있을 수 없다. 그 희생의 결과가 전체 후생을 증대시킨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고 그의 처지나 사회적 지위가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마찬가지다.
반면 전체선의 원리에서는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사람은 여러 선택지 중에서 전체 효용의 합을 극대화시키는 안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무책임성을 극단적으로 잘 표현하는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