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을 꾸려나간다는 것
매일 이슈가 끊이지 않는 IT업체에서 워킹맘으로 일하다 보니 매일이 전쟁 같았다. DJ DOC의 노래로만 즐겁게 기억하고 있던 <머피의 법칙>. 결정적인 순간에 안 좋은 일이 겹쳐서 일어나는 그 법칙이 유독 나에게만 자주 일어나는 듯했다. 행사가 있는 날에는 아이가 유독 아침에 늦장을 부렸고, 그런 날에는 만나는 신호등마다 빨간 불이었으며, 회사 주차장에 자리가 없었다. 분기별, 반기별로 한 번 있는 아이의 상담이나 공연 시간에는 꼭 부정 이슈가 터져서 늦거나 결국 참석하지 못했다. 아이는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울기 일쑤였다. 빠질 수 없는 회식이 있는 날에는 아이는 아파서 응급실에 갔고, 아이의 세 번째 생일 당일에는 베트남 출장길에 있었다. 베트남에서 일을 처리하느라 몇 번 거절한 뒤 받을 수 있었던 영상 통화에서는 거의 녹아서 사라지기 일보 직전인 초와 울기 직전인 아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아이를 가지기 전에는 회사를 관두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넘쳐났었는데, 아이를 가지니 회사를 관둬야 하는 이유가 너무 많아져 버린 느낌이었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회사였고,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회사였기에 욕심 내고 싶은 기회들이 즐비했지만, 존경할 만한 사람들과 자부심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꼈던 순간도 많았지만, 그만큼 그 모든 것이 너무 벅차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날도 그런 날들 중 하나였다. 제대로 말리지 못한 머리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로션만 바른 쌩얼로 아이를 힘들게 어린이 집에 들여보내고 출근을 위해 주차장으로 뛰어가는데 아이 친구와 엄마를 마주쳤다. 편한 복장과 슬리퍼를 신고 여유 있는 엄마의 모습. 곁에서 엄마 손을 꼭 잡고 있던 아이의 땋은 머리는 어찌나 정갈하고, 예쁘던지. 순간 머리를 너무 급하게 묶어서 산발 수준이던 내 딸의 모습과 겹쳐지며 빵점 엄마에 빵점 딸, 빵점 아내로 거듭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억지웃음을 짓고 있는데 친구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출근하시고 너무 부럽네요”
회사를 향해 엑셀레이터를 밟으며 비꼬는 투가 아닌 진심 같았던 친구 엄마의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서로의 삶이 스쳐 지나가던 그 찰나에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서로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가끔 엉망처럼 느껴지는 내 삶을 누군가는 부러워하는구나. 그런 나도 누군가의 삶을 부러워했구나. 갑자기 깨달음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당연한 사실이 나를 덮쳤다. 그렇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삶은 없으므로 모두가 누군가의 삶을 부러워한다. 일방적으로 부러움만 받는 삶도, 그 반대의 삶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 아무도 서로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닐까.
그 아침의 깨달음 이후로 나는 적어도 누군가를 부러워하지는 않게 되었다.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그 에너지를 모아서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을 받아들이고 더 잘 살아가는데만 집중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베이징 중심가인 궈마오(国贸). 우리나라의 테헤란, 뉴욕의 맨해튼쯤 되는 곳으로 베이징 중심 상업 지구(CBD, Central Business District)다. 금융, 경제, 과학, 문화 등 각종 사무실과 명품 브랜드의 번쩍번쩍한 명품 브랜드숍이 있는 쇼핑몰, 5성급 호텔이 줄지어 있는 곳으로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세련된 베이징의 멋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도요타와 제너럴 모터스 등 다국적 기업의 본사가 대거 입지해 있으며 한국 기업이 중국에 직접 건립하거나 보유한 빌딩 가운데 가장 높은 삼성 타워(260m, 57층)와 베이징에서 제일 높은 건물인 ‘중신타워’(528m, 108층), 반바지를 닮은 독특한 디자인으로 랜드마크가 되어버린 중국 최대 방송국 ‘CCTV’ 건물이 있다. 종종 아침 일찍 궈마오에 간다. 총총걸음으로 출근하는 사람들 틈에 껴서 나도 종종 노동자의 기분을 느껴본다. 그들의 목에 매여 있는 사원증에 시선이 오래 머물곤 하지만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나도 지금 나의 삶을 나만의 방식으로 잘 꾸려 나가고 있는 중이니까.
궈마오몰(国贸商场) 3(期)쪽에는 CCTV 건물 뷰가 가능한 훌륭한 식당들이 즐비해 있다. F.Bistronome(프렌치), HANA(일식), Atta bj(서양식), Migas Mercado(서양식), 딘타이펑(중식), SUSU(베트남식), Blue Frog(서양식), brotzeit(서양식)… 모두 환상적인 뷰와 꽤 괜찮은 음식 맛을 보장하는 곳이다.
궈마오 몰 길 건너에 위치한 케리 센터 1층에 중국 수제 맥주 브루어리 <京A> 지점이 작년에 오픈했다. CCTV 건물을 배경으로 하고 아침 8시부터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궈마오 京A Taproom은 이미 왕홍들에게 유명한 포토 스폿이 되었다.
궈마오 京A Taproom
베이징에 오니 한국의 지인들의 삶은 더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동료들은 엄청난 인센티브를 받았고, 승진을 했다. 친구들은 강남에 집을 사고, 경력과 재산을 착착 불려 나갔다. 나는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면서 스페인에서 날아온 24살 청년과 중국어 수업을 들었다. 새로 학생이 되는 일은 설레는 일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해도 중국어는 좀처럼 늘지 않았고, 무엇보다 35세에 시작한 낯선 외국어로 그 어떤 생산적인 결과물을 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내 벽에 부딪혔다. 자괴감에 빠질 만반의 준비가 되어 눈을 떴다. 그럴 때마다 그 아침을 떠올렸다. 지금 내 삶을 누군가는 부러워하고 있을 거라고, 그러니 함부로 스스로의 삶을 무시하고 누군가를 함부로 부러워하는 일은 하지 말자고.
무의미한 시간은 없으니 이 시간들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줄 것이다. 그 어딘가에서 나는 또 끝없이, 지겹게 내가 되어 걸을 것이다.
베이징_도시산책
도시와 마음을 함께 산책하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