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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Nov 12. 2023

딱 30초의 시간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이어령

이어령 교수는 사랑하는 딸을 잃고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를 썼다.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이어령 교수가 딸에게 매일 굿나잇 키스를 해줄 만큼 다정한 아빠였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달콤한 제목 뒤의 슬픈 사연은 이랬다. 


네가 서재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나에게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나는 글을 쓰는 시간이었고 너는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내게 들려온 것은 "아빠, 굿나잇!"하는 너의 목소리뿐이었지. 이 세상 어떤 새가 그렇게 예쁘게 지저귈 수 있을까. 그런데도 나는 목소리만 들었지. 너의 모습은 보지 않았다. 뒤돌아 보지 않은 채 그냥 손만 흔들었어. "굿나잇, 민아." 하고 네 인사에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너는 그때 아빠가 뒤돌아보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안아주기를, 그리고 볼에 굿나잇 키스를 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니면 새 잠옷을 자랑하고 싶어 얼마 동안 머뭇거렸을지도 모른다. 

...


그때 아빠는 가난했고 너무 바빴다고 용서를 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바비인형이나 테디베어를 사주는 것이 너에 대한 사랑인 줄로 알았고 네가 바라는 것이 피아노이거나, 좋은 승용차를 타고 사립학교에 다니는 것인 줄로만 여겼다. 하찮은 굿나잇 키스보다는 그런 것들을 너에게 주는 것이 아빠의 능력이요, 행복이라고 믿었다.

...


만일 지금 나에게 그 30초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하나님이 그런 기적을 베풀어주신다면, 그래 민아야, 딱 한 번이라도 좋다.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듯이 그때의 옛날로 돌아가자.


나는 그때처럼 글을 쓸 것이고 너는 엄마가 사준 레이스 달린 하얀 잠옷을 입거라. 그리고 아주 힘차게 서재 문을 열고 "아빠 굿나잇!"하고 외치는 거다. 약속한다. 이번에는 머뭇거리며 서 있지 않아도 된다. 나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읽다 만 책장을 덮고, 두 팔을 활짝 편다. 너는 달려와 내 가슴에 안긴다. 내 키만큼 천장에 다다를 만큼 널 높이 들어 올리고 졸음이 온 너의 눈, 상기된 너의 뺨 위에 굿나잇 키스를 하는 거다. 


굿나잇 민아야, 잘 자라 민아야. 


그는 매일 저녁 굿나잇 키스를 하듯이 민아의 영혼을 향해 글을 쓴다. 그리움이 해일처럼 밀려올 때는 '그 높은 파도가 잠잠해질 때까지 울면서'. 처음에는 독백이었고 그 이후에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 같았던 글들은 결국 3인칭이 된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하지만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말을 건다. 당신도 그랬냐고. 그때 그 골목을 지나다가 그런 기억들이 떠올랐냐고.  


삶의 방향을 잃었다고 느껴지면 이 책의 첫 번째 챕터 <네가 없는 굿나잇 키스>를 읽는다. 인생의 답이 이 이야기에 들어있다고 믿으면서.


우리가 하루에 30초의 굿나잇 키스, 30초면 충분한 말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겠지만 많은 것들이 달라지겠지.


정말 중요한 일들에 필요한 시간은 가끔 믿을 수 없이 짧다.

서로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 스티치몬스터랩 스틸라이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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