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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과 20분의 법칙

정리의 골든타임

by 심루이

세상에서 제일 자신 없는 분야가 바로 '정리'인데 '쓰고 제 자리에 두면 정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나는 제일 이해하기 어렵다. 그게 어려우니까 40년째 고생인데요. 한때 무질서가 창의력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에 의지하기도 했지만 가끔 인생의 5분의 1 정도는 무언가를 찾는데 허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허탈하기도 하다.


정리를 마주할 때 5분과 20분을 생각한다.


먼저 5분. ‘플라이 레이디’라고 불리는 미국인 말리 실라가 시도한 ‘5분 방 구출법’. 이는 집안 가장 엉망인 장소에 가서 타이머로 5분을 맞춘 후 타이머가 울릴 때까지 격렬한 부기 춤을 추듯 최대한 몸을 움직여 물건을 치우는 것이다. 5분의 댄스로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설득.


20분의 법칙은 김교석 작가의 <아무튼, 계속>에서 찾은 아이디어인데, 매우 간단한 비법이다. 정리에도 골든 타임이 있으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타이머를 맞춰 놓고 20분간 정리하는 것. 약간의 긴장감이 내 몸에 아직 남아 있을 때, 피곤과 귀찮음이 잡초처럼 퍼지기 전, 바로 그때가 정리의 골든 타임이다.


두 가지 비법을 혼합해 외출에서 돌아오면 20분 타이머를 맞추고 부기 춤을 추듯 미친 듯이 정리를 해본다. 정리할 것이 별로 없다고 시간을 줄이지도, 많다고 늘리지도 않는다.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딱 20분. 이불을 개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넌다. 줄어드는 시간을 볼 수 있는 구글 타이머를 눈으로 확인하며 집중력을 끌어올린다. 아직까지는 꽤 결과가 좋은 편이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20분이 생각보다 긴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말에는 춘과 심이도 부기춤 대열에 합류시킨다. “20분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알아?”라고 신나서 심이에게 얘기했더니, “엄마 그 얘기 열 번째야”라는 그녀의 쿨한 대답.


나에게도 일상을 유지하는 루틴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20분의 법칙’이다. 이름까지 붙였다는 건 꼭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별다른 건 없다. 긴 시간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최소 20분은 옷만 갈아입고 무조건 집안 정리를 하는 거다. 밤샘 근무를 하고 왔든, 어쩔 수 없이 모임에 나갔다가 술을 마시고 새벽 2시에 왔든, 격한 운동을 하고 녹초가 돼서 돌아왔든 예외는 없다. 예외는 방심하면 금방 퍼지는 잡초와 같다. 피곤하다고, 귀찮다고, 일단 쉬고 보자고 한 번 두 번 몸을 그냥 누이기 시작하면 그게 얼마 후 새로운 루틴이 되고 만다.


집에 들어서면 옷만 갈아입고 20분간 집안일을 한다. 전날 널어놓은 빨래를 갤 수도 있고, 일찍 퇴근한 날이면 흰 빨래를 돌릴 수도 있고, 조명 펜던트같이 먼지가 잘 쌓이는 물건들의 먼지를 털 수도, 수요일 저녁 일과처럼 진공청소기를 돌릴 수도 있다. 설거지해놓은 그릇과 조리도구를 제자리에 정리해놓거나, 분리수거를 하거나 가습기 필터 청소 또는 화장실 욕조 및 타일 청소를 할 수도 있다 어쨌든 최소 20분 동안 요일별로 정해놓은 일을 하고, 그 일이 일찍 끝나면 다른 일을 찾아서 뭐라도 한다.


김교석, <아무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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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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