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 입원 전 우유 한 잔에 선식을 타서 먹었을 뿐이다.(새벽 불편한 병원 침대에 누워 생각하니 입원 날 엄마 영에게 제대로 된 밥을 먹이지 않은 게 가슴에 화살처럼 박혔다. 밥이라도 먹이고 병원에 들여보낼걸, 후회와 후회, 그리고 또 후회 중.)
검사는 심전도 검사, 엑스레이, 피검사, 소변검사 총 네가지.
일차적인 결과는 담도 막힘이다.
조직검사를 통해 암의 유무를 밝히겠지만 의사 소견으로는 '거의' 암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염증일 수도 있다.
거의라는 말이, 아주 드물게 라는 말이
이렇게 절망스러울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다.
엄마 영 앞에서는 울 수 없기에 두 주먹을 불끈 쥔다. 더 쥘 수 없을 정도의 힘으로.(실은 출산 때도 제왕절개로 낳았기 때문에 주먹을 꾹 쥐어본 적이 없다.)
내 엄마 영은 유머가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팔에 빽빽하게 꽂힌 수액 바늘 연결 고리를 보며 보일러실 같다며 낄낄 웃는다.
회진을 도는 의사 앞에서 엄마 영은 얌전해진다.
그리곤 그동안 그 누구에게 말하지 않았던, 혼자 겪었던 통증에 대해 말한다.
자식인 나는 의사의 옆에서 몰랐던 그녀의 통증에 대해 듣는다.
새벽 홀로 자던 중 찢어질 듯한 위통을 겪었을 영을 생각하니 뒷골이 서늘해진다. 내가 딸 마리의 울음을 막기 위해 쪽쪽이 셔틀을 하고 있을 때, 내 엄마 영은 고요한 집에서 혼자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위가 찢어질 듯한 고통을 이제야 알게 된 못난 딸은 가슴이 찢어진다. 당장이라도 영에게 무릎을 꿇고(말을 이렇지만 실은 난 출산 후 겪은 일과성 골다공증으로 다리 상태가 좋지 않아 무릎을 꿇을 수 없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미안한 거 투성이라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언어를 또 삼킨다.
5인실 병실에 환자복을 입은 영의 모습이 풍경에 어울리지 않은 액자처럼 보인다. 집에서 가져온 필름 카메라로 영을 기록하려고 해 본다.
"이런 모습을 뭐하러 찍어 좋은 것도 아닌데"
영이 화를 내는 와중에도 카메라 버튼을 누른다. 흔들렸겠지만, 그래도 영의 모습 하나 기록 성공. (우리 집은 집안 사정으로 집안의 모든 사진을 소실했다. 그 흔한 가족사진 한 장 없는 집이 바로 우리 집.)
엄마 영도 나도 제왕절개를 제외한 입원은 처음이다. 영은 40여년만에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영이 아프다. 나도 다리가 아프다. 그리고 내 딸 마리도 아프다.
지난 주말 욕심내 80일이 지난 떡애기 마리를 데리고 마트를 다녀온 것이 화근 같다. 그날부터 마른기침을 시작하더니 가래가 끓어 어린이집을 보낼 수 없다.
아이도 돌봐야 하고 엄마도 돌봐야 하는 나. 상황이 좋지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 한 소설(제목은 기억 안 난다) 속 초입에서 한 여자 주인공이 이런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