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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투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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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스 Feb 15. 2022

환자의 입장

투병 29일 차

2022년 2월 15일 화 날씨 눈


지난 일요일 벼락같은 전화를 받았다. 딸 마리의 어린이집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것이다. 나와 남편 바리는 태어난 지 100일이 조금 지난 마리를 데리고 선별 진료소로 향했다. 내 눈곱만 한(눈곱이 얼만하길래..?) 콧구멍에 면봉을 쑤셔대지만 늠름한 마리는 울지 않는다.(마리는 배가 고플 때만 우는 것 같다. 아, 위대한 식탐이여.)


코로나 검사 전 가장 걱정됐던 건 내 엄마 영에게 갈 피해였다. 주말에 마리와 함께 있었는데 혹시 영도 양성이 나오면 어떡하지? 수술 앞두고 확진이 되면 어떡하지? 수술이 또 밀리면 어떡하지? 그 사이 암이 더 퍼지면?


다행히 마리는 음성이다.


선별 진료소로 가는 길.


대신 어린이집은 일주일간 폐쇄됐다. 때문에 나는 홀로 딸 마리를 5일(주말은 남편 바리와 함께하니 제외) 간 돌보아야 된다는 말이다. 성하지 못한 다리로 떼쟁이 마리를 돌볼 수 있을지도 걱정이고, 일주일간 홀로 밥을 챙겨 먹어야 할 엄마 영도 걱정이다. 수술 전 영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는데 상황이 도와주질 않는다.


어제 처음으로 마리를 혼자 돌보고 난 또다시 (저번 간병 1일 차처럼) 몸살이 날 것만 같다. 혼자 쓸쓸히 대충 차린 밥을 먹고 있을 영을 걱정하다 매일 어린이집에서 낯선 사람 품에 안겨 밥을 먹고 있을 마리를 보니 미안함이 썰물처럼 밀려온다. 일주일만이라도 엄마가 주는 분유 먹고 기침이랑 나아서 어린이집 가자, 울 아가.


영은 수술 전 잡 외래진료를 다녀왔다. 영은 "의사가 진료하는 동안 날 한 번도 안 쳐다봤다"며 아쉬워한다. 의사를 믿고 병원을 선택했고 그곳에서 이제 자신의 운명을 시험하게 됐는데. 의사의 사무적인 태도가 영은 못내 서운하다. 한 번이라도 눈을 바라보며 '걱정하지 말라'라는 말 한마디 해줬다면 좋았을 걸. 전화로 영의 마음을 토닥인다. 바빴을 거야 그 의사.

아마 영에겐 의사의 진료실이 마치 아테네 신전 같았을 것이고, 의사의 말 한마디가 마치 신탁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것이 암 환자의 입장이다.


어제 고등학교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오늘 장례식장에 간다.

요즘처럼 누군가의 죽음에 아프게 반응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어떻게 해야 친구를 잘 위로해주는 것일까. 친구 아버지를 향해 절은 못하겠지만(다리가 낫지 않아)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고 오겠다.


이 세상에 아픈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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