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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투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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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스 Mar 08. 2022

엄마 다 나았어, 괜찮아.

수술 이후

2022년 3월 8일 화 날씨 맑음  


오랜만에 쓰는 일기이다.  

내 엄마 영은 그 사이 수술을 했고 오늘 이른 퇴원을 한다.


지난주 월요일, 영은 5시간에 걸친 큰 수술을 했다. 수술을 마치고 나온 그녀는 심한 통증으로 힘들어했고, 지금은 자력으로 살살 걸어 다닐 수 있다.  


수술실로 향하는 엄마 영.

영의 수술 날 오빠 운과 나는 보호자 대기실에서 5시간을 기다리며 많은 이야길 했다. 오래간만에 푸는 남매의 회포랄까.  

수술 날 대기실엔 울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어린 딸이 누워있는 수술실 문이 닫히고 눈물을 흘리던 어린 엄마. 대선 후보가 나오는 텔레비전 앞에서 티비 소리가 파묻힐 정도로 엉엉 울어대던 한 아주머니. 대기실 끄트머리에 서서 조용히 눈물을 훔치던 할아버지. 그리고 나.

울음은 전염력이 강했다. 누군가의 울음은 다른 누군가를 계속 울게 했다. 우리는 각자의 사연에 공통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걱정과 후회와 자책이 섞인 소금물.  


수술 후 의사는 영의 몸에서 떼어낸 암덩어리의 장기들을 보여줬다. 위, 간, 췌장 일부를 절개한 커다란 덩어리였다. 저 커다란 덩어리가 없어졌으니 영의 몸은 이제 한결 가벼워졌을까.   

수술과 함께 전이 여부를 알기 위해 조직검사를 의뢰했고 다행히 전이는 없다고 결과를 받았다. 기쁘고 감사하다. 이제는 재발, 이후 전이를 걱정해야 할 단계다. 담도암은 타 암보다 전이와 재발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는 달리기를 하는 기분이다. 출발선에서 느꼈던 긴장은 한층 사라졌지만 계속되는 뜀박질에 숨이 가빠오는 그런 기분. 벌써 지칠 때는 아니다. 조금 더 달리고, 우승을 맛보고 싶다.


엄살과는 거리가 먼 성격의 엄마 영은 수술 후 죽을 것 같다며 여러번 소리쳤다.

그동안 남편 바리는 내게 영 앞에서 울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 정도쯤은 나도 알아,라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난 결국 수술 후 괴로워하는 영 앞에서 울고 말았다. 강한 마취 탓에 계속해서 눈이 감기던 영은 우는 딸을 보며 말했다.

엄마 다 나았어, 괜찮아.


피곤하다. 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던 영은 병원에 머무르는 노인들을 보며 내게 종종 말했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병실에서의 생활에 벌써 지쳐가는 나를 보며 그 말이 떠오른다. 나는 효자 근처에는 못 갈 인물이다.


무교인 나는 영의 암 소식 이후 매일 밤 오른손엔 남편 바리의 손을, 왼손엔 잠든 딸 마리의 손을 잡고 기도한다. 하느님과 부처님을 부른다. 신앙심 없는 이의 급조한 기도를 들어주기 바라며.

영은 이제 항암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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